사주란 나를 중심으로 한 내 환경(사람 중심)의 역학적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나와 내 환경의 역학적 표현이 사주이다.
사주 전체(여덟 자)는 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주는 나와 가족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사회(조직, 단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와 내가 속해 있는 국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주 안에는 나의 위치가 있다. 일간이 나의 위치다. 비유하자면 사주는 하나의 좌표계이고 일간은 원점인 셈이다. 한 개인의 사주는 그 사주가 속해 있는 더 큰 계의 원점이다.
사주는 이 처럼 해석중심이 있게 되고, 그 중심을 기준으로 해석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주에는 나(我) 라는 개념이 있고 이것이 아주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만약 사주에 나 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사주는 개인의 운명에 대한 고유한 지문이 되었을 것이다. 사주가 고유한 지문이라면 동일한 사주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관점이 틀리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사주에는 일간과 같은 해석중심(또는 원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리 동일한 사주가 많다 해도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주는 기본적으로 여덟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개체로 이루어진 구성체이다. 내 사주에 있는 각 글자는 육친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을 의미한다. 각각의 타인은 사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은 내 사주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글자로 표현이 된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의 사주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글자로 표현된다.
사주라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일간) 내 주변 사람(타 간지)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내가 내 주변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내 사주 하나만 아는 것만으로는 나에게 일어나는 사사건건들의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의 사주에 내가 어떻게 표현되어 있고 또 그 사람과 내가 어떤 길흉의 관계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비로소 내 삶이 사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사주를 당구대 위에 있는 여러 개의 당구공으로 비유해서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어느 위치에 있는 어느 당구공과 어떤 속도와 어떤 각도와 어떤 스핀으로 부딪히느냐에 따라 내 공이 어디로 움직이는 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사주는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단순화 시켜 표현한 모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주를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주는 고유한 지문이 아니다. 어떤 가족적 환경, 사회적 환경, 국가적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주라도 그 길흉의 형태는 달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굉장히 다이나믹한 해석을 낳게 한다. 그리고 거기엔 절대적인 운명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주를 통해 그 사람의 절대적인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또 다시 말하면 사주는 응용이 가능하고 처세의 기술로써도 쓰일 수가 있다.
내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내 사주로 다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왜곡된 해석을 낳을 뿐이다.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사주에 내가 어떻게 표현이 되었는지 들여다 봐야 한다. (조)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 사회적 관계의 지인에 그 원인과 결과가 있다.
사주는 나와 여러 사람들(환경)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사주를 본다는 것은 나와 여러 사람들의 사주를 다 살핀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내 사주만 본다는 것은 사주해석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사주를 보려면 그 개인은 물론 그 개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사주를 함께 살펴야 한다.
사주는 주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사주를 보기 전에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와 성별을 물어본다. 사주의 여덟 글자가 같다는 것은 사주 안에 표현되어 있는 사람들의 사주까지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사주도 주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생년월일시와 성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같이 해석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사주를 분석하는 일도 여간 만만찮은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만큼 넓은 시야를 제공해준다. 사주는 연구할 것이 너무도 많다.
이것이 내가 내리고 있는 사주의 정의와 구조에 대한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