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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신비경 41
날짜 : 2005-07-13 (수) 08:51 조회 : 2579

* 다음은 巨物(거물)政治人(정치인) 정게요직두루 걸친 江原道(강원도)출신 崔
珏圭(최각규) 사주 명조다

庚 己 甲 癸
午 未 子 酉
우선 甲己合土(갑기합토)하고 地支(지지)午未(오미)日月(일월)이 들었는데 얼
른 봐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천천히 뜯어보면 그 貴氣(귀기)가 서린 명조라
할 것이다
所以(소이) 甲子(갑자)로부터 癸酉(계유)까지 十(십)旬(순)의 六甲(육갑)이 모
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리라
고만 日柱(일주) 己未(기미)대에다 갖다가선 여러개를 몰아 붙쳐 놓는데 우선
乙丑(을축)丙寅(병인) 丁卯(정묘) 戊辰(무진) 己巳(기사), 이다 그러고 난 다
음 時柱(시주) 庚午(경오)가 되는데 여기서 곱쳐선 다시 年柱(년주)쪽으로 六甲
(육갑)順(순)을 꼽는다면 辛未(신미)가 日柱(일주)에 가서 또 붙고 壬申(임신)
이 月柱(월주)대에 가선 붙어선 이제 고만 年柱(년주) 癸酉(계유)로 마무리짓
고 만다
이래 六甲(육갑) 첫 머리순 甲子(갑자)旬(순)이 모두 갖춰지게 된 四柱(사주)이
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日干(일간) 己(기)가 乙己鼠 向(을기서후향)하니 고만 月柱(월주)
대에 子申(자신)이 兼(겸)하여선 그대로 貴人(귀인) 대가 된다 할 것이고, 甲
戊庚(갑무경)牛羊(우양)하니 천상지 고귀한 신분이라 할것인데 그 戊字(무자)
가 없다고 생트집을 벌인다 할 것 같으면 그 己字(기자)가 하는 말이 나도 戊字
(무자)의 四寸(사촌)土性(토성)인데 貴氣(귀기)가 그만 못지 않다 하고선 앞과
의 설명과 같이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래 의지하여선 日干(일간)을 붙들고 도우
니 그야말로 己未(기미) 日柱(일주)대가 그냥 王土(왕토)가 된다는 것이다
崔珏圭(최각규)라=
年柱(년주) 支(지) 金氣(금기) 酉(유)에서 부터 시작하여 본다면 癸子(계자)로
銳氣(예기)를 金生水(금생수)하여 낸다면 銳氣(예기) 癸子(계자) 는 다시 水生
木(수생목)하여 甲(갑)과 未中(미중)乙木(을목)으로 힘을 積載(적재)하면 天干
(천간)은 甲己合(갑기합) 土化(토화)하여선 土(토)가 되고 地支(지지)未(미) 木
局墓庫(목국묘고)속에는 丁火(정화)가 들어선 乙木(을목)을 木生火(목생화)하
고 그 木生火(목생화)는 다시 未中(미중)己土(기토)를 보고선 火生土(화생토)한
다 이래 土氣(토기)가 旺(왕)하고 그 時柱(시주)대 庚午(경오)는 午中(오중)丙
火(병화)로 그 時干(시간)庚金(경금)을 억제하고 그 午中(오중)己土(기토)를 生
(생)하여선 역시 土性(토성)을 두터웁게 한다 그래서 土(토)가 旺(왕)하는 그러
한 모습이다 소이 中央(중앙)土氣(토기)가 대단하게 커졌다는 것이리라
이래서 銜字(함자) 그대로 崔(최)= 높으다는 의미인데 사람이 산더미 만한 흙
을 이루었다 뫼山(산)字(자) 아래 새 字(추자)는 원래 그 사람人邊(인변)에 雙
土(쌍토) 圭(규)한 字(자)로서 그 아름다울 佳字(가자)와 거의 竝行(병행)形
(형)이다
珏字(각자)= 雙玉(쌍옥)이란 의미로서 己未(기미) 日柱(일주)대가 干支(간지)모
두 한결 같이 雙(쌍)으로 그 土(토)가 旺(왕)하여진 모습이라는 것으로 소이
그 五行(오행)性(성)을 표현하여 포개놓으면 圭(규)字(자)= 소이 쌍토 서옥[上
圓下方(상원하방)의 圭撮刀(규촬도)= 둥그렇게 반달처럼 칼처럼 생긴 빛나는 그
러한 玉(옥)이라는 것이리라= 소위 그 노리개 같은 것이아닌가 하여 본다]을 이
룬다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아주 커다란 둥근 陰陽(음양)이 맛 물리면 太極(태극)形(형)의 노리개라는 것
이다
아마 그 크기가 산더미만 한 태극형의 암수 맛물린 서옥 노리개라는 것으로서
그 세상에 둘도 없는 상당한 귀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할 것이다


* 다음은 국회의원 金令培(김영배) 명조라 하는데 확실치 않을 수도 있다

己 乙 壬 壬
卯 丑 子 申
으로 함자와 잘 소통 되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壬癸(임계)巳兎藏(사토장)과 乙己鼠 向(을기서후향)의 貴氣(귀기)는 있는데
銜字(함자)上(상)에 水氣(수기)가 분명 없는데 四柱(사주)에는 水氣(수기)가 지
금 넘쳐 나고 있는 모습이라서 혹시 年(년)月(월)이 잘못 되지 않았나 본다
銜字(함자) 그 의미는 통하는데 사주에 원체가 물이 많은지라 金(금)이 令(영)
을 내리길 土(토)를 설립시켜서 못처럼 만들라 한다, 이러면 그 좀 통하는 면
이 있다할 것이다
姓氏(성씨) 金形(금형)이 金生水(금생수)를 원체 많이 하여 놓고선 그 퍼져 나
가는 것이, 그래서 그 水氣(수기)가 虛失(허실) 되는 것이 두려운지라, 令字(영
자)= 그 명령을 내리듯 하여선, 培(배)字(자)= 흙으로 하여금 구 소이 못형을
설립 시키라 하는 것인 것이다
소이물이많으니 그 물 막으라는 것이리라
年支(년지) 申(신)으로부터 銳氣(예기) 壬子(임자)를 발하여선 그壬子(임자)는
銳氣(예기) 乙(을)로 만들어선 그 빗겨 卯字(묘자)門戶(문호)를 보고선 그 록줄
이라 하여선 나아가려 하니 허실 될 것인지라 그래서 그 빗겨 己丑(기축)土(토)
로 막으라 하는 것이다
그래물가두는 못 댐이 되었음에 새 종류 고니들이 와선 놀게 된다는 것이리라


* 다음은 여류 시인 모윤숙 명조이다

庚 甲 戊 己
午 寅 辰 酉

고귀한 신분 甲戊庚(갑무경)이 年柱(년주)를 排除(배제)하였으니 고독한 팔자
임을 알겠 도다
地支(지지)에 寅午半局(인오반국) 辰酉合局[진유합국]되었다, 甲(갑)이 寅中(인
중)祿(록)을 얻어선 든든한 가운데 庚沖[경충]은 그 머리를 탁 트이게 깨이게
하는 작용을 한다 할 것이다
무기 黃金(황금) 꾀꼬리 리가 楊柳(양류)에 앉아선 그 食傷(식상)으로 지저귀
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辰字(진자) 黃鳥(황조)가 本身(본신) 日柱(일주)대를 쳐다보지 않고 그 적합의
둥지가 있는 年柱(년주)대를 쳐다보니 그 배우자 정분이 멀어 졌다는 것이리
라 소이 時干(시간)대의 庚金(경금)은 扁官(편관)祿(록)이요 年支(년지)대의
地藏(지장)辛金(신금)이 正官(정관)인데 멀어선 이래 합하여 갖고 오다보니 辰
中(진중)乙木(을목)과 寅木(인목)이 모두 앗아 재키는 형이요 그 온다 하여도
이미 그 남편 기운이 많이 손상된 모습인지라 그리곤 日時(일시)支(지) 傷官(상
관)이 핍박할 것이라 그래선 고만 그 남편이 오래지 못하고 자식대의 그 도충官
(관)을 食傷(식상)이 살라 치우고 함에 고만 그 딸 자녀 하나를 두었다 하는지
모르겠다
早失父母(조실부모) 自手成家(자수성가)형이라 한다

모윤숙 [毛允淑, 1910.3.5~1990.6.7]
요약
한국의 시인.

호 영운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함남 원산
주요수상 대한민국예술원상(1967), 국민훈장 모란장(1970), 3·1문화상
(1979), 금관문화훈장(1991)
주요저서 《렌의 애가》 《모윤숙 전집》 《논개》


↑ 모윤숙의 증언 / 1950년 11월 8일 시인 모윤숙이 북한군의 서울함락 당시를
회고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본문
호는 영운(嶺雲)이다. 1910년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성장하
였다.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35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선과(選科)를 수료하였다. 그 후 월간 《삼천리(三千里)》 기자, 중앙방송국 기
자 등으로 활동하였고, 1933년 첫 시집 《빛나는 지역》, 1937년 장편 산문집
《렌의 애가》를 출간하였다.

그러나 1940년부터는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임전대책협의회(1941)·조선교
화단체연합회(1941)를 비롯해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1942), 국민의용대 총사령
부(1945) 등에서 활동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하자〉〈일본군
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조선 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는 등의 친일적
인 내용의 글들을 신문에 연재하였다.

광복 후에는 문단과 정계에서 폭 넓은 활동을 전개해, 1948년에는 월간문예지
《문예》를 발간하는 한편, 1948·1949년에는 국제연합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하기도 하였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장, 1954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강사 및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을 거쳐 1957년 대한
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8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총회 한국대표, 아시아 여성단체연
합총회 한국대표, 1960년 펜클럽 한국위원장, 1962년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1968년 한·인(印)협회 부회장, 1969년 여류문인협회장, 1970년 서울 국제펜클
럽대회 준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8대국회에 민주공화당 전국구 대표로
당선되었고,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장(1973), 통일원 고문(1974), 펜클럽 한국
본부 회장(1977), 문학진흥재단 이사장(1980)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예술원상, 3·1문화상 등을 받았고, 저서에는 《모윤숙 전집》《논개》《렌의
애가》 등이 있다. 196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1970),
1979년 3·1문화상을 받았고, 199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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