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허중명서에 나온 사주법을 고법사주라 칭하는데 요즘에 쓰는 사주와는 형태가 다르다. 우선 고법사주에서는 년간을 祿, 년지를 命, 년주의 납음을 身이라 한다. 이를 녹명법이라 한다.
사주는 태원, 월주, 일주, 시주를 적는다. 년주 대신에 태원을 적는데 여기서 태원(胎元)이란 잉태한 달을 의미한다. 태원은 천간보다 지지를 중시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잉태한 달의 계절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태원이란 개념은 근본부터 잘못된 개념이다. 사주는 기본적으로 태아가 모체로부터 분리되는 시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태원은 잉태한 시점을 말하므로 기준이 혼란스럽게 된다. 게다가 잉태한 시점을 참고로 한다면 왜 굳이 월만 참고로 해야 하는가? 잉태한 년월일시 모두 참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태원을 사용하는 큰 이유는 잉태한 시기의 계절을 봐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지를 중시한다고 한다. 이미 많은 지적을 했지만 지지(월)는 계절을 표현할 수가 없다. 월지 하나만으로 계절을 표현할 수 있다면 기상청은 밥그릇 놔야 한다. 사주는 북반구 남반구 적도지방 할 것 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사주를 세운다. 이런 관점에서 잉태한 시기의 계절을 보기 위해 태원을 사주에 첨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태원을 알기 위해서는 태어난 시점부터 과거로 280일 이전의 월을 본다고 한다. 이또한 현실과는 맞지 않는 눈때중에 불과하다. 사람에 따라 임신기간이 다르다. 보통 37주 ~ 42주가 일반적이다. 그 전에 미숙아로 보다 일찍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특이하게 더 길게 모체 안에 있는 경우도 있다.
태원은 그럴 듯한 개념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상상일 뿐이다.
오래전에 나온 것일 수록 신비스럽고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비기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허망한 생각이다. 이는 마치 환타지 무협지에서 나이든 협객일 수록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대에 나온 개념일 수록 모호한 것이 많다. 그것을 신비스러움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수학이나 과학사를 보더라도 초기에 어떤 개념이 발견되었을 때 모호하던 것이 후대에 점점 그 개념이 뚜렷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지성은 무엇이든 뚜렷하게 알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신비스러움은 안개와 같이 먹먹한 것이다. 신비스러움을 배격하고 철저한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