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년월일시를 의미하고 그것은 여덟자(八字)로 되어 있다. 일견하여 말하면 팔자는 시간에 관한 문제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역(易)에선 시간과 공간을 별도로 나누지 않는다. 시간을 표현하는 음양오행이 공간을 표현할 때도 쓰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역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모두 농축되어 있다.
우리는 시간을 조정할 수 없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하여, 나 오늘 '갑자'일로 하고 나 오늘 운수 좋은 날로 할래 라고 할 수 없다. 시간은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다시 가져올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간에 관한 인간의 운명은 굉장히 수동적이고 인간이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역(易) 개념을 다시 들여다 본다면 거기엔 여지가 있다.
우리는 시간과는 달리 공간 안에서는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닐 수 있다. 동서남북 위아래. 공간을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의지의 능동적 표현이다. 물론 모든 공간을 내 집처럼 내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에도 역(易)이 있다.
시간의 관점에서 운명은 굉장히 수동적이지만, 공간의 관점에서 운명은 아주 능동적일 수 있다. 즉, 노력에 의한 개척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간에 관한 운명과 공간에 관한 운명(의지로 개척하는 길)이 상충할 수는 있다. 운명을 개척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한 예들이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처절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저 마다의 살 길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면서도 기회를 얻기 위해 타지로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곳에서 행운을 얻어 삶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탈북자들이 좋은 예다.
사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주의 표상은 그 사주의 명주가 속해 있는 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이란 국가, 사회, 가정 등을 의미한다. 즉, 같은 사주라도 어떤 시스템에 있느냐에 따라 길흉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난세에 강한 사주는 어려움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빛이 날 수 있다. 같은 사주라도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 처해져 있느냐에 따라 한량이 되고 또는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에 관한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간에 관한 운명은 개척이 가능하다. 현재의 입지(처해진 상황이나 공간적 위치)가 어렵다면 움직이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즉,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또는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기회를 찾는 것이 가장 능동적인 대처 방안이다. 꼼짝 없이 운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가장 소극적인 대처 방안이다.
다양한 시스템(다양한 국가, 사회)이 존재하고 다른 시스템으로의 이동이 가능한 현대사회에서는 능동적인 대처 방안이 답일 수 있다. 사람팔자 공간문제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