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력: 1919년 7월 16일 최규하
음/평: 1919년 6월 19일 남자
일 월 년
己 辛 己
巳 未 未
박정희 시해사건
+: 1979년 10월 26일 금
-: 1979년 09월 06일 평
일 월 년
丙 甲 己
寅 戌 未
12.12 사태
+: 1979년 12월 12일 수
-: 1979년 10월 23일 평
일 월 년
癸 丙 己
丑 子 未
제10대 대통령 취임
+: 1979년 12월 06일 목
-: 1979년 10월 17일 평
일 월 년
丁 乙 己
未 亥 未
5.18 광주사태
+: 1980년 05월 18일 일
-: 1980년 04월 05일 평
일 월 년
辛 辛 庚
卯 巳 申
대통령 퇴임
+: 1980년 08월 16일 토
-: 1980년 07월 06일 평
일 월 년
辛 甲 庚
酉 申 申
최규하의 사주는 지금 처음 봤는데 참으로 놀랍다. 1979년부터 1980년에 이르는 국가적 변란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만약 최규하가 국무총리로 있지 않았다면 저 당시의 흑역사가 일어났을까? 최규하는 비록 요직에 있던 인물이었지만 한 개인일 뿐이다. 그 한 사람의 사주로 인해 국가적 운명이 바뀔 가능성이 있었을까?
사주는 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주가 어떤 사주와 인연을 맺게 되는 지에 대해서는 사주로는 알 수 없다. 사주라는 행마를 아우르는 좀 더 고차원적인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결국 국가적 운명이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규하라는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사주를 통해 국가적 운명의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최규하가 아닌 다른 인물이 있었다면 사주의 형태 또한 확연히 달랐다면 그 과거와 같은 변고는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물의 관점에서 봐도 나름 타당하다. 전두환은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최규하는 정보에 깜깜이었다. 전두환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 최규하의 자리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