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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芝枰 | 21.02.06 10:06 | 945 hit
삶 이전과 이후는 어떤 면에서는 같고 어떤 면에서는 다르다. 같은 면이라고 한다면 그 존재가 더 이상 살아 숨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삶의 이전과 이후를 지극히 좁게 본 관점이다.

삶 이전과 이후는 엄연히 다르다. 그 중간에는 어떤 존재의 삶이란 것이 있다. 삶 이전에는 그 존재에 대한 실체가 전혀 없다. 하지만 삶 이후에는 그 존재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그 흔적과 자취가 남아 있다. 때문에 삶의 이전과 이후를 동일시 할 수 없다.

이런 관점을 사주에 적용하여 보면 이렇다. 태어나지도 않은 삶에 대한 사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사주를 가지고 영향력을 논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고 죽었다면 그 사람의 사주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치 살아 있던 사람이 죽었다고 그 영향력을 완전히 잃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망자의 살아생전 사주가 얼마 동안이나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시일 안에서는 분명히 그 영향력이 있다.(근시일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는 특정하기 어렵다.) 이 의미는 망자의 살아생전 사주로 살아있는 유족들의 길흉을 살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윤회의 관점에서 망자의 사주를 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살아있던 사람이 죽은 시점을 새로운 인생에 대한 사주로 보는 것이다. 만약 망자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다른 세상에서 가지게 된다고 치자. 하지만 그 삶은 망자가 살아생전의 세상은 아니다. 죽음의 시점에서 얻는 사주는 이 세상과는 무관하므로 그것을 통해 남아있는 유족들의 길흉을 판단하는 것은 일리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만약 죽음의 시점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전생이 아니라 후생의 삶에 대해 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확인 불가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芝枰 2021.02.06 22:25
사주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현실의 논리가 이러하니 사주의 논리 또한 그러한 것이 마땅하다.

실제 살아생전 망자의 사주를 통해 남아 있는 유족들의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사주를 해석해 보면 된다.

이런 방식이 막연하게 조상의 음덕 운운하는 것보다 훨씬 실체성이 있다.

芝枰 2021.02.08 11:30
물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주장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인간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사주라는 관념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니 말이다. 하지만 사주라는 세계관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 보면 그곳에는 사주가 보여주는 길흉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패턴이 보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더욱 파고 들어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 중에 완벽한 것은 없다. 부족한 것은 채워가고 다듬어 가면 된다. 물리학과 수학도 그렇게 발전되어 왔다. 사주도 마찬가지다.

수학과 물리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수학을 도구로써 물리를 설명하니 잘 되더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주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주를 도구로써 인생을 설명하니 그럭저럭 되더라는 것이다. 이 역시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 만큼 완벽하진 못 하다. 그렇다고 버릴 필요는 없다. 더욱 발전시키면 된다. 수학이나 물리학도 그렇게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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