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무엇인지 정의도 하지 않은 채 운명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산으로 가게 된다. 아마도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운명이란 그저 삶의 모양 정도일 것이다.
사주에서 말하는 운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주팔자와 운의 흐름이다. 사주와 운은 모두 간지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단순하게 사주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운명은 정해져 있다.
일반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글자들이 아닐 것이다. 삶의 내용이다. 그것들은 과연 정해져 있는가?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자.
과학자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탐구해 가고 있다. 인간도 우주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존재다. 물리학자들은 이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원자들을 통제하는 법칙이 존재한다. 그러한 원자로 이루어진 인간은 과연 어떠한 법칙에서도 자유로운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의 의지로 새로운 우주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가진 능력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물리법칙의 통제 하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결국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게 된다.
우리가 밤에 자면서 꾸는 꿈은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꿈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해석하면 미래가 보인다. 아이가 태어날 때 가족이나 지인이 꾸어주는 태몽은 그 아이의 미래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태몽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삶은 정해져 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된다.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보면 거기엔 규칙성이 있다. 물론 변칙성도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인간의 삶의 궤적이나 행동의 궤적들을 마치 애니메이션 그리듯 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테두리 안에서의 삶의 형태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운명은 바꿀 수 있나? 절대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모든 의지와 행동과 노력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인간 자신의 모든 변화를 미리 다 알아낼 수는 없다. 인간이 가진 지력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들을 노력의 대가 또는 운명을 넘어서는 능력이라고 표현해도 할 말은 없다. 다만 운명론자들은 그것들을 예측하기 위한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