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 사람들의 사주는 북반구 사람들의 사주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유
1.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다.
2.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절기도 반대다.
3. 절기가 반대이기 때문에 남반구는 북반구와 시간이 상충한다.
만약 저런 주장이 옳다면 적도 선상에 사는 사람들의 사주는 어떻게 세우나? 그 사람들은 사주 자체가 없나?
저런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다. 저건 마치 북반구 사람들은 더하기나 곱하기를 할 때 남반구 사람들은 빼기나 나누기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절기는 농사를 위해 북반구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만 사주에서 쓰이는 절기는 단지 시간이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는 전혀 없다. 절기가 계절을 표현한다는 것은 농부의 입장이지 사주의 입장이 아니다. 절기가 계절을 상징한다는 것은 그러한 심상을 인위적으로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지구가 크고 둥글고 북반구와는 다른 계절의 남반구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 국소적인 지역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사고에 불과하다.
사주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북반구 오늘이 신축년이듯 남반구도 신축년이다. 거기에 계절은 없다. 북반구 오늘이 경자월이듯 남반구도 경자월이다. 거기에 계절은 없다. 계절 감각을 육십갑자에 덮어 씌우는 것은 농경사회적 습관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주적인 논리가 아니다. 사주는 농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누군가가 북반구의 간지 시스템을 남반구 사람들한테 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반구 사람들은 그것이 괜찮다 여겨 그것을 채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경험하는 계절적 감각을 간지에 입혀서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날 북반구와 남반구 사람들이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자신들이 똑같은 간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같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느낌을 있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똑같은 간지 글자를 사용한 시스템인데 그것에 대한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북반구 사람들은 午를 보고 뜨거움을 생각하는데 남반구 사람들은 午를 보고 차가움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반구 사람들이 午월에 북반구에 온다고 추위를 느낀다거나 북반구 사람들이 午월에 남반구에 가서 더위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적 감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을 것이다. 감각은 논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사주에서는 모든 것을 간지로 표현한다. 간지로 표현하지 못 한다면 사주에서 쓰일 수가 없다. 즉 계절이란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간지로 표현해야만 한다. 하지만 간지는 계절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즉 계절 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 간지가 없다는 것은 간지가 계절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물상론자들은 지지 중에 午가 가장 뜨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더운 시기는 申월이다. 하루 중에서도 온도가 가장 높은 시기는 午기가 아니라 未申시다. 그리고 위도에 따라 지형의 형태에 따라서도 온도가 달라진다. 간지가 온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신인 것이다.
간지를 계절 감각으로 이해한 것은 북반구 특정 위도 지역에서의 농경사회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간지는 시간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시간은 북반구 특정 위도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간지는 전 지구적으로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특정 지역의 계절 감각을 고정시키는 것은 왜곡의 시작이다. 그것은 모순만을 일으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