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서 삶과 죽음은 길과 흉의 개념이 아니다. 생사는 길흉을 떠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주는 생사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정의도 없다. 단지 길흉의 연장선에서 흉하면 그 정점을 죽음으로 보는 것 뿐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느낀다. 자아가 소멸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죽음 이후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상황과 같다. 그런데 태어나기 전에 내 존재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삶의 이전과 죽음 이후는 완전히 대칭적인데 왜 우리의 감정은 그러지 못 한 것일까.
사주는 삶과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 한다. 삶과 죽음의 사이의 변화를 다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