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와 책소개에 나온 작자의 주장을 보니 한 마디로 정리가 된다.
"사주는 없다" 라고 주장하는 무식한은 있다.
저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잘못된 주장들을 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또 기존에 있는 정리되지 않은 자료들 속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완성된 학문으로서의 사주학을 원했지만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만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 책 제목처럼 사주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 작자와 같은 태도라면 세상에 그 어떤 학문도 결코 발생할 수 없고 발전할 수도 없다. 그 예를 들어보자.
인류가 언제부터 수에 대해 인식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굉장히 오래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인류가 사칙연산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장구한 인류 역사에 비교한다면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류 역사를 24시간으로 본다면 1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다.
만약 저 작자가 사칙연산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기 전 태어났고 누군가가 수의 존재와 계산이라는 주장을 한다고 치자. 저 작자는 호기심이 생겨 똑같은 방식으로 계산에 관해 자료들을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사칙연산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기 전이므로 그 어디에도 만족할 만한 답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숫자라는 것도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도 모르니 숫자도 부정할 것이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글자 모양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저 작자는 숫자나 계산이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미신이라고 할 것이다.
저것이 저 작자가 주장하는 방식이다. 지금 현재 내가 원하는 답이 없으니 그건 무의미하다는 식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저 작자한테는 미래가 없다. 미래는 항상 미래일 뿐 결코 오지 않기 때문이다.
저런 자들이 하는 짓이 혹세무민이다. 자신의 무식을 팔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지만 자신의 무지를 담아서 책 같지도 않은 책을 쓰고 돈을 벌려는 수작이 볼썽사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