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들. 또 하나는 사주를 공부해봤으나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이해를 못 하는 자들.
사주를 전혀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거나 관심도 없으면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데 마치 지들이 뭔가를 아는 것처럼 헛소리를 그렇게들 해댄다. 그렇게 떠들어봐야 자신들의 무지만 드러내는 꼴이다.
사주에 대한 큰 착각 중에 하나가 "운명은 정해져 있다" 는 하나의 문장이다. 저 문장 하나가 정말 많은 오해들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운명이라 한다면 사주에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 저런 발상은 운명을 절대적 사고관으로 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사주는 운명이다. 그러므로 사주에 모든 것이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치 영화 필름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사주에도 그런 구체적인 실체들이 나와 있어야 한다는 우격다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나오지 않는다. 아주 잘못된 발상이다.
사주에서 말하는 운명은 상대적 사고관이다. 그리고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주의 관점에서 개념화된 운명을 말한다. 사주가 동일하다면 사주의 관점에서 어떤 공통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사주의 운명관이다. 결코 그 사람의 얼굴 체격 성별 국적 인종 그런 따위가 같다는 것이 아니다. 이건 사주를 몰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그걸 마치 사주가 엉터리인 한 이유로 주장을 한다.
물리학에서 에너지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 에너지라는 개념이 없다면 물리학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에너지라는 개념은 종교에서 왔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왜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시작은 종교일지라도 그것의 진면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주무식자들한테 말한다. 사주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함께 인생을 걸고 실험을 해보자. 당신이 아이를 낳을 예정이거나 당신 자식이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면 내가 사주를 잡아주겠다. 단, 정말 흉한 사주를 잡아줄 것이다. 사주를 부정하는 자들한테는 흉한 사주든 길한 사주든 어차피 무의미할테니 상관 없을 것이다. 흉한 사주를 잡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흉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면 당신의 주장대로 사주가 없다고 주장해도 된다. 한 사람의 실험자만으로는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니 많은 사람들 대상으로 인생 실험을 해보자. 최소 10명 이상. 그리고 몇 십 년 동안 관찰을 해보자. 사주대로 흉한 인생이었나 길한 인생이었나.
왜 하필 흉한 사주일까? 일부러 엿먹일려는 것이 아니다. 길 보다는 흉이 더 확실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길한 것은 오래 걸리지만 흉한 것은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길한 것은 인간의 노력 때문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으로도 극복되지 않는 흉한 인생이 사주에 있다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사주를 부정하는 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전하기 바란다. 이런 실험을 통해 증명을 해보기 바란다. 당신들의 주장대로 사주무용론이 증명된다면 사주라는 혹세무민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