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주쟁이들이 대운을 참고로 사주를 해석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주책에서는 대운을 적어 놓는다. 그런데 특정 문파에서는 대운을 처음부터 쓰지 않는다고 선포를 해놓기도 한다. 맹파명리와 운정비결이 그런 예다.
대운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대운이 맞지 않거나 자신들의 관법과는 상충한다는 주장과 같다. 하지만 저들은 대운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만의 관법을 주장하며 그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려고 한다. 기존의 방식과는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수학의 예를 보자. 어떤 문제를 풀 때 기하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대수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기하학자들이 오직 기하학만이 진실이라 외치지도 않고, 대수학자들도 대수만이 진실이라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분야는 잘 융합하여 커다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점을 저들은 배워야 한다.
대운을 쓰지 않는 파들은 대운을 무시하며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대운을 쓰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를 내놓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관법을 대운까지 확장해서 더 나은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것은 그저 어리석은 똥고집일 뿐이다.
사실 대운만으로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사주 원국을 보고 열심히 해석해서 용신을 잡고 그것을 대운에 적용해서 해석하면 허탈하게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신살론자들은 아예 대운을 거의 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운을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혹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개인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양심 없는 발언이다. 그 쓰임의 타당성을 밝혀야 하는 것이 학자들의 임무인데 개인의 선택으로 돌린다는 것은 자격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