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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주가 그 개인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芝枰 | 19.11.09 09:30 | 1,116 hit
사주에는 '나'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 이것은 곧 사주라는 시스템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설명하는 체계라는 것이다. 사주 전체는 오롯이 '나'가 아니라 '나'와 '환경'의 의미를 가진다는 필연적 해석이 나온다. 여기서 환경이란 자연환경이 아니라 사회를 의미한다. 사회는 인간을 구성요소로 한다. 가장 작은 사회는 가족이다. 넓은 사회는 직장이나 동호회이고 더 큰 사회는 국가다.

즉 길흉이란 나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결과다. 내 사주에 내 환경이 나오고, 타인의 사주에도 환경이 나오고 그 타인의 환경에 내가 속해있다. 때문에 한 사람의 길흉은 그 한 사람의 사주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한 사람의 사주로 그 사람의 모든 길흉을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혼했다 치자. 그 사람의 이혼을 오직 그 사람의 사주만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치자. 이런 주장은 자체적으로 모순을 포함한다. 그 사람의 사주만으로 그 사람의 이혼은 설명 가능하지만 그 사람의 배우자가 이혼했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저 주장에 배치된다.

사주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인간관계 또한 일방통행이 아니다. 사람이 영향을 주고 받듯 사주도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관점에서 사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사주에서 육신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의 길흉은 오직 그 사람의 사주에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면 육신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일간이 곧 '나'라는 개념을 사용해선 안 된다. 그것은 모순이다.

芝枰 2019.11.09 21:37
육신 개념이 존재함으로써 한 개인의 사주를 통해 가족의 길흉을 논할 수 있고 또한 가족의 사주를 통해 나의 길흉을 알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족은 바로 환경을 의미한다. 비단 가족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친밀한 사람 또는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개인의 길흉은 그 개인의 사주에 모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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