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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는 미래 예측술이 아니다
芝枰 | 24.06.27 07:28 | 285 hit
사주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런데 사주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라고 보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주는 표현의 한계가 있고 현실은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은 무엇(what)에 대한 질문이다. 무슨 일, 무슨 직업, 재물의 크기, 등등. 인간관계 외에 대한 질문은 아마도 이것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주는 무엇에 대한 답을 줄 수가 없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사주는 표현의 한계가 있고 현실은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사주는 마법의 구슬이 아니다. 사주를 본다고 마치 영화 속 마법사가 구슬을 들여다 보듯 정해진 미래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사주는 무한한 다세계를 표현한다. 하나의 사주가 표현하는 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그 말인즉슨 사주는 현실과 일대일 대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주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현실의 다양성을 공통된 패턴으로 묶어놓은 세계가 사주다. 그래서 하나의 사주에는 수많은 세계가 담겨있게 되는 것이다. 무한한 현실을 사주로 축소해서 보는 것은 쉽지만 축소된 사주에서 사람마다 다른 현실을 끄집어내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주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패턴이지 절대적인 현실의 모습이 아니다. 절대적인 현실의 모습은 다르더라도 사주가 표현하고자 하는 패턴의 범주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손잡이가 있는 커피잔과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이 위상동형인 것과 같다.

사주만을 통해 어느 한 사람의 절대적인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려는 것 자체는 무의미하다. 그 사람의 현실부터 파악하고 그 현실의 연장선에서 사주를 통한 길흉을 판단해야 한다. 사주는 수많은 현실에 대한 압축판이고 그 압축판에서 어떤 현실이 어떤 특정한 사람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알고자 하는 사람의 현실 정보를 충분히 안 다음에 궁금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주는 부분적인 미래 예측출은 될 수 있지만 완전한 예측술은 될 수 없다.

芝枰 2024.06.27 09:03
예를 들어 2027년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지를 알기 위해 대한민국 사람들 사주를 모두 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후보군이 마무리 됐을 때 그들의 사주를 비교해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당선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생아의 사주를 보고 이 아이의 사주가 너무 좋아 몇 년도가 되면 반드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주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사주만을 가지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반드시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판단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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