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계절학이 아니다.
고전식 사주풀이는 월이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농경사회나 유목민 사회는 삶 자체가 계절의 영향을 아주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현대와 같은 냉난방 시설 자체가 잘 되어 있지 않았고, 식량을 생산하는 것 조차도 자연에 의지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월령을 중시했던 것은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주해석은 월령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현대사회도 식량을 생산하는 데에 있어서 계절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전 지구적인 규모로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의 계절이 나쁘면 계절이 좋아 식량 생산이 원활한 곳으로부터 수입하면 된다.
지축의 기울기가 어떠하든 날이 춥든 덥든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월은 나눠진다. 계절이 어떠하든 상관 없이 시간은 흐르고 월은 나눠진다. 이 의미는 사주해석을 현실의 감각에 의존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바로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시적인 미사려구를 써가면서 사주를 해석하는 것은 옛날옛적에나 하던 일이다. 지금은 논리로 해야 한다. 그래야 검증과 폐기를 쉽게 할 수 있고 이론을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나 논리로 사주를 전개시켰어야 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논리라는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이제는 감각체험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논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사주학을 발전시키는 유일하고 올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