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학은 하루의 시간을 12시진으로 나누고 점성술(astrology)은 분단위까지도 나누어 본다고 한다.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점성술이 세세하고 정확하다는 말들을 한다. 과연 그러할까? 단순히 시간을 쪼개는 단위를 기준으로만 삼는다면 오히려 주역을 최우선으로 놓아야 할 것이다. 주역은 나노초 아니 찰라의 순간으로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 비교는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소립자수준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시간을 세세히 쪼개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사람의 삶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잘못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해도 하루의 시간을 12시진이 아닌 24시간으로 쪼개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12지지가 아니라 24지지를 썼어야 할 것이다. 단지 이러한 사고들은 아쉬움일 뿐이다. 현 체계에 맞는 이해를 해야한다.
사주는 원래 그 하나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사주는 일자가 아니라 팔자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 의미는 사주란 것은 세상과 단절된 절대적 독립개체가 아니란 것이다. 사주내에 표현된 육친들의 관계에 의해 팔자가 정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사주만을 보고 삶을 판단하는 것은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주 하나로는 그 사람의 삶의 모든 것을 다 해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심 때문에 온갖 기괴한 이론들이 생겨나는 것이고 기초에 대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는 것이다.
사주를 한 사람의 절대적인 인생방정식으로 보는 것은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주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이다. 그 세계를 보며 사주학적인 패턴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단순히 사주 하나만 놓고 그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하려는 것은 사주학을 가장 작은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태양주위를 공전한다. 하지만 주위 행성과 달의 영향으로 자전과 공전에는 변화가 생긴다. 지구의 정확한 자전과 공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영향을 반드시 고려 해야 한다. 사주 또한 이러한 것이다. 사주가 온전히 독립된 개체로서 독뿔장군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개체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이들의 사주를 반드시 함께 파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방식이고 가장 정확한 방식이다. 사주의 해석방식은 이러한 방향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하나의 사주개체가 다른 사주개체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응용들은 무궁한 변화를 가져다준다.(궁합이란 것은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사주의 변화가능성은 점성학의 시간 쪼개기 따위 수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