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은 중국의 고증역학파다. 고증역학은 상수나 의리로 역(易)을 해석하지 않고 역경의 괘효사에 담긴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초기 주역의 괘효사가 가진 본래의 뜻을 살리자는 것이다.
국내에는 고증역학파가 드물지만 김상섭이라는 역학자가 고증역학을 하고 있다. 그는 고형의 열렬한 팬이면서, 고증역학에 바탕을 둔 고사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김상섭의 여러 저서에 의하면 좌전과 국어에 실려 있는 주역점 22조를 고증역학파인 고형이 완전히 파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형과 김상섭에 의하면 주희의 점법은 변효를 구하는 방법이 나와 있지 않아 불완전한 것이며, 고형이 변효를 구하는 방법을 파악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주제는 과연 고형의 변효법이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는 것이다.
먼저 고형의 변효 계산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18변서법으로 괘를 세운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여섯효에 음양을 나타내는 숫자가 남게 되는데 그 숫자는 6, 7, 8, 9 가 되고 이를 영수라 한다. 6은 노음, 7은 소양, 8은 소음, 9는 노양이라 한다.
예를 들어 18변서법으로 얻은 수가 아래와 같다 하자. 초효부터 상효까지 6 7 7 7 8 7 라고 한다면 이는 화풍정이 된다. 영수를 모두 더 하면 42 가 된다. 이것을 천지의 수라고 하는 55에서 뺀다.(55-42) 그러면 나머지는 13 이 된다.
천지의 수에서 영수의 합을 뺀 나머지를 변효로 바꾸는 방법은 이렇다. 1효부터 6효는 그대로 변효가 되고, 6이 넘으면 상효에서부터 내려온다. 7은 상효변, 8은 5효변, 9는 4효변, 10은 3효변, 11은 2효변, 12는 1효변이 되는 것이다. 12보다 크면 1효부터 다시 올라간다. 이 방법에 의해서 예로 든 화풍정 괘는 2효가 변하는 효가 된다.
그런데 고형에 의하면 변효는 여기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하다. 고형의 변효 계산법에 의해 나온 변효와 괘를 세울 때 나온 변효가 일치해야 비로소 변효가 되는 것이다. 예로 든 화풍정 괘는 이효가 소양이다. 소양은 변화할 수 없는 효다. 고형의 변효 계산법에 의해 2효가 변할 수 있는 효로 나왔지만 정작 그 자리에는 변하지 않는 효가 있어 결국 변효가 되지 못 한다.
고형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18변서법으로 나온 6과 9는 각각 노음과 노양인데 이는 변효가 아니라 변할 수 있는 효 즉 변할 가능성만 가진 상태다. 이 효들이 변하려면 고형이 주장하는 변효 구하는 법에 의해 나온 딱 하나의 효와 매치해야만 한다.
예를 2효가 6(노음)인 경우가 나왔다 치자. 이것은 아직 변효가 되기 전이다. 고형의 변효 계산 결과 2효가 나온다면 비로소 변효가 되고 본괘의 2효의 효사를 참고하여 점을 판단한다. 만역 고형의 변효 계산 결과 다른 효가 나온다면 2효는 노음이 나왔음에도 변효가 되지 못한다.
이것이 고형의 주장이다.
저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수치적인 방법으로 저 주장의 합리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건 주장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문제다.
주역의 64괘는 음양 대신 6, 7, 8, 9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 괘당 64가지의 조합이 존재한다. 이 조합은 프로그램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실행해 보니 모든 괘에서 변효가 골고루 분포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천건과 중지곤과 지천태를 예로 들어 보자.
중천건
| 변효가능 | 변효완성 |
6효 | 20회 | 10회 |
5효 | 15회 | 10회 |
4효 | 15회 | 5회 |
3효 | 6회 | 5회 |
2효 | 6회 | 1회 |
1효 | 2회 | 0회 |
중지곤
| 변효가능 | 변효완성 |
6효 | 2회 | 0회 |
5효 | 6회 | 5회 |
4효 | 6회 | 1회 |
3효 | 15회 | 10회 |
2효 | 15회 | 5회 |
1효 | 20회 | 10회 |
지천태
| 변효가능 | 변효완성 |
6효 | 6회 | 1회 |
5효 | 15회 | 5회 |
4효 | 2회 | 1회 |
3효 | 20회 | 9회 |
2효 | 6회 | 1회 |
1효 | 15회 | 5회 |
고형의 변효법에 의하면 중천건은 4, 5, 6효가 변효가 될 확률이 1, 2, 3효가 변효가 될 확률보다 월등하게 높다. 반면 중지곤은 1, 2, 3효가 변효가 될 확률이 4, 5, 6효가 변효가 될 확률보다 월등하게 높다.
중천건에서 4, 5, 6효가 변효가 될 확률은 78%이며, 1, 2, 3효가 변효가 될 확률 22% 밖에 되지 않는다. 중지곤에서는 1, 2, 3효가 변효가 될 확률이 78%이며, 4, 5, 6효가 변효가 될 확률은 22%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괘들도 효의 위치만 다를 뿐 세 개의 효가 변효가능 확률이 78%, 세 개의 효가 변효가 될 확률이 22%가 되는 것은 동일하다.
실제 6이나 9가 나와 변효까지 가는 경우는 그 가능성이 더욱 줄어든다. 한 괘당 64번의 영수조합이 가능한데 그 중 절반은 변효가 될 수 없다.
중천건 1효의 경우 변효가능한 횟수가 2회인데 변효까지 성공하는 경우 1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마저도 여섯효가 모두 9로 되어 있어 변효가 될 수 없다. 즉, 중천건 괘에서 1효가 변효가 될 확률은 0 이다.
이는 상당히 불합리한 결과다. 어떤 괘가 나오느냐와 어떤 효가 변효가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여야 한다. 하지만 고형의 변효법에서는 특정 효가 변효가 될 확률이 괘에 의존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마치 괘가 효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특정 효가 변효가 되기까지는 확률이 굉장히 희박하다. 변효를 구하는 일 자체가 무색하게 되는 것이다.
김상섭은 자신의 저서에서 주희의 점법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 문제란 괘마다 하나의 변효를 특정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가 추종하는 고형의 변효법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고형의 변효법으로도 실제 변효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반드시 하나의 변효를 정하고자 했던 고형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다.
결론적으로 고형의 변효법은 불합리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점법이다.
고형은 좌전과 국어에 실린 주역점 22조를 연구하여 변효 계산법을 찾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굉장히 잘못된 발상이다. 18변서법에 의하면 괘 변화의 경우의 수는 4096 가지다. 주역점 22가지는 고작 0.54프로 밖에 되지 않는다. 좌전과 국어에 실린 주역점의 개수가 주역점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말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고형의 변효법이 억지로 주역점 22조를 설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만약 주역점에 관한 고대의 유물 기록이 추가로 발견된다면 고형의 변효법이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고형의 변효 계산에 의한 결과는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참고 서적
춘추점서역, 김상섭
주역점의 이해, 김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