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계산법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이 틀린 듯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음력월을 정할 때 24기 중에서 12중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합삭일 간에 어떤 중기가 오느냐에 따라 음력월의 이름이 정해진다. 우수가 오면 1월이고 동지가 오면 11월이다. 등등
따라서 24기를 음력의 역일에 배당하여 썼다는 말은 주객이 전도된 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순태음력에서는 오로지 달의 운행만을 보고 음력을 만든다. 12중기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비록 그 달력이 계절을 제대로 반영은 못할 지언정 하루가 지나고 달이 지나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계절반영이 안된 음력이라도 세월의 자(ruler) 역할을 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만약 세월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어떤 표현잣대가 없다고 치자. (이 글에서는 음력을 말함) 24기가 각각 언제쯤인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역법을 관장하는 관리가 태양의 그림자를 매일 열심히 자로 재서 오늘이 동지다 오늘이 입춘이다 라는 것을 일일이 알려야 하는 걸까? 태양의 그림자에 대한 측정표를 공표하고 그것으로 24기를 정한다고 하면 그것처럼 불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장마철에는 또한 어떠할 것인가.
음력에 24기가 적용되어 새로운 음력월을 정하는 방법이 탄생했다손 치더라도 음력이라는 눈금자에 24기를 표현하였기 때문에 음력의 역일에 24기를 배당하였다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음력이 24기보다 먼저 쓰였을 것이란 기원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24기를 음력의 역일에 배당하여 썼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배당이라는 말이 임의적인 지정이라는 듯한 뉘앙스가 있기는 하지만, 24기를 음력으로 표기하여 사용했다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어보인다.
음력과 24기에 관한 글이므로 별도로 나날의 잣대로 태양력을 고려하지 않음.
p.s.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순태음력에도 태양력의 요소가 있지 않은가? 하루의 잣대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에 있고, 달의 위상 변화는 태양빛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