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우리가 써오던 음력이나 현재 우리가 쓰는 음력에는 양력의 요소가 들어있다.
1. 음력월을 정할 때 12중기를 사용한다. 12중기는 양력 개념이다. 예) 합삭일 사이에 우수가 들어오면 그 달을 음력 정월(1월)로 한다. 우수는 태양의 황경이 330도 되는 시점이다.
2. 윤달을 정할 때 합삭일 사이에 중기가 들어있지 않은 달(무중월)을 택한다. 역시 양력 개념의 중기를 참고한다.
3. 달의 모양(위상변화)이 바뀌는 것은 달의 위치와 달에 반사된 태양빛 때문이다. 태양이 없으면 달의 위상변화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쓰는 음력에는 태양의 요소가 들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역일(曆日: 하루)이 지남을 알리기 위해 달의 위상변화를 기준으로 날짜를 매긴다. 계절 변화를 알리기 위해 24기를 표기한다. 우리가 써왔던 음력 달력에는 달과 태양의 요소가 다 들어있는 것이다. 즉, 태음태양력이란 표현이 맞다. 태음태양력이란 표현이 옛 문헌에 나오지 않는다 하여도 정확한 표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일 음력 달력에 씌여 있는 음력 날짜만을 가지고 이건 무조건 음력 달력이야 라고 주장하거나, 24절기가 적혀 있고 12중기를 기준으로 음력월이 정해진다는 것만 가지고 이건 무조건 절기력이야 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편으로 치우친 주장일 뿐이다.
음력 달력에는 달과 해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는 걸 가지고 달력이 2가지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만일 이것을 완전히 분리해서 2 가지 달력이라고 본다면, 완전히 달의 요소만 있는 달력과 완전히 해의 요소만 있는 달력이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 위에 적은 3.의 이유 때문에 완전히 달의 요소만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 이유를 배제한다면 순태음력은 가능하다.(과연?)
순태음력을 생각해보자. 어느 특정 시점의 합삭일을 순태음력의 역원(曆源)으로 삼는다. 합삭일은 1일이 된다. 다음 합삭일은 다시 1일이 된다. 역원이 시작되는 첫달은 제 1월이 된다. 그 다음 합삭일부터는 제 2월이 된다. 이런 식으로 순태음월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1월 2월... 10월 ... 100 월 ... 5000월 ... 순태음력의 장점은 하늘에 떠 있는 맨눈으로 관찰 가능한 달의 모양이 주기적 변화하는 것과 아주 잘 일치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해의 요소는 들어있다. 1일(日) 2일(日) .. 은 하루의 변화 즉 해의 요소이다. 달의 위상변화는 한달이라는 시간 개념을 뚜렷하게 알려주지만, 하루라는 개념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절기력을 생각해보자. 절기력은 매 중기일이 1일이 된다. 그 다음 중기일은 다시 1일이 된다. (중기가 아니라 절기를 기준 삼아도 된다. 선택의 문제다.) 우수가 시작되는 시점을 1월이라 하자. 춘분 2월 곡우 3월 ... 다시 우수가 시작되면 다시 1월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절기월을 통해 달(중기간 간격 또는 절기간 간격)이 변하고 있음을 느끼기에는 굉장히 어렵다. 누가 일일이 그림자 길이를 재고 있을 것인가. 춘하추동 이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계절감각이 뚜렷이 구분된다. 계절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절기력이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두 가지 달력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해보자. 순태음력에서는 계절을 알려주지 않는다. 절기력에서는 오늘이 초하룻날인지 보름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보름에 있는 민속명절을 즐기려면 순태음력을 보아야 하고, 농사의 적기를 알기 위해서는 절기력을 보아야 한다. 두 가지 달력이 별도로 존재한다면 용도에 따라 따로따로 보아야 한다. 이 얼마나 번잡하고 머리 아픈 일인가? 이런 식으로 두 가지의 달력이 별도로 존재하고 사용되었다는 흔적은 안 보인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음력에는 달과 해의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고 잘 융합된 형태이다. 이것은 순 음력도 아니고 순 태양력도 아니다. 당연히 순 절기력도 아니다. 두 가지가 별도로 사용된 적도 없다. 따라서 달과 해의 요소가 융합된 형태의 한 가지 달력(태음태양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