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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계산] 삼국사기 일식(日食) 기록
芝枰 | 21.03.04 02:22 | 1,817 hit
1  기원전 0054년 04월 01일(음)  일식이 일어나다  신축 朔 O
2  기원전 0034년 06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임신 晦 O 한중일 일식 없음
3  기원전 0028년 04월 30일(음)  일식이 일어나다  기해 晦 O
4  기원전 0026년 08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을묘 晦 O
5  기원전 0015년 02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을유 晦 O
6  기원전 0002년 01월 01일(음)  일식이 일어나다  신축 朔 O
7  기원후 0006년 10월 01일(음)  일식이 일어나다  병진 朔 O 한중일 일식 없음
8  기원후 0016년 07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무자 晦 O (6/29)
9  기원후 0124년 09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경신 晦 O
10 기원후 0127년 07월 01일(음)  일식이 일어나다  갑술 朔 O
11 기원후 0141년 09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신해 晦 O 한반도 관측 불가
12 기원후 0114년 03월 (음)      일식이 일어나다            한중일 일식 없음

1 ~ 11: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
12: 卷第十五 高句麗本紀 第三

朔: 초하루 음력 1일
晦: 그믐 음력 29일 또는 30일
O: 일진이 일치함


일진과 음력 날짜를 확인해 봤더니 8번만 빼고는 1부터 11까지는 다 맞는다. 내가 만든 간지달력에는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부분에서는 8번이 6월 29일로 나오고, 천문계산을 한 부분은 7월 1일로 나온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부분의 데이타를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2번은 양력(율리우스력)으로 기원전 34년 8월 23일이다. 이 날은 지구상에 일식이 없었다. 한달 뒤인 9월 22일에 남극을 지나가는 일식이 있었다.

7번은 양력(율리우스력)으로 기원후 6년 9월 11일(음 7월 30일)과 11월 10일(음 10월 1일)이다. 둘 다 일진은 병진이다. 일식이 일어난 시기는 9월 11일이다. 이때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일식을 볼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개기일식을 볼 수 있었고, 한반도에서는 부분일식을 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아마도 날짜 기록의 오류가 아닌가 한다.

11번은 양력(율리우스력)으로 기원후 141년 11월 16일(음 9월 30일)이다. 이때는 중국에서 부분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고, 한반도에서는 해가 진 뒤에 일식이 진행됐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12번은 양력(율리우스력)으로 기원후 114년이다. 이때는 5월 22일(음 4월 1일) 신묘일에 일식이 있었지만 한중일 아랫쪽 즉,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을 지나갔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에서는 일식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15일(음 10월 1일) 무자일에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부분일식을 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삼국사기에 기록이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타베이스에는 코멘트가 달려 있는데 삼국사기 내용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기록의 오류라거나 중국 측 자료를 베낀 것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중국 측 자료를 베낀 걸 수도 있지만 실제 관측이 아닌 계산에 의한 예측을 기록으로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12번 같은 경우는 한반도나 중국에서는 일식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계산에 의한 예측만 가능했었다. 그리고 일진도 틀렸다.

芝枰 2021.03.04 03:59
한국천문연구원 천문 기록 검색
http://astro.kasi.re.kr/almanac/pageView/24

고조선부터 조선까지의 천문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

芝枰 2021.03.04 23:08
삼국시대 연력표(한국학술정보)를 주문해서 받았다. 당시 한반도에서 쓰인 역(曆) 기록 자료가 충분치 않아 주로 중국자료를 참고로 해서 엮었다고 한다. 내가 2007년에 만든 간지달력은 대만자료와 일본 자료를 참고로 해서 만든 것이다. 지금 비교를 간단히 해보니 다소 좀 차이가 있다.

일단 삼국시대 연력표 일러두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6. 본문의 자료중 8-22년, 689-700년, 761-762년은 중국에서 1월이 바뀌는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삼국사기를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1월의 위치를 정리하였다.

(1) 8-22년: 이 시기는 아직 우리나라에 역(曆)이 널리 보급되어 활용되지 않았고, 문헌 기록도 없어 중국 자료를 그대로 따랐다.
(2) 689년-700년: 중국에서는 689년부터 1월이 바뀌었으나,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는 695년 1월의 위치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신라에 역법이 도입되어 사용하던 시기이었으므로 중국의 자료를 따르지 않고 우리의 기록에 맞추어 695-700년 사이의 1월의 위치만 바꾸었다.
(3) 761-762년: 이 시기는 신라에서 문헌기록이 가능했던 시기로, 만약 1월이 바뀌었다면 신라에 여러 기록이 남아있었을 터인데, 삼국사기에 월(月)의 변화에 대해 기록이 없으므로 바꾸지 않았다.

이 글 본문에 8번 부분을 확인해보니 삼국시대 연력표와 인터넷역학 간지달력 사이에서 음력 1월의 시작에 한달의 차이가 있었다. 그 당시 신라의 기록이 없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알 길이 없으나, 신라 또한 중국으로부터 역법을 도입해서 썼기 때문에 중국력을 따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대만 자료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역법의 원리분석(이은성)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 11장 한국의 역
1. 옛 역법의 도입
한반도에서의 역법의 발달과 변천은 실질적으로 중국 역법의 도입과 소화과정이 된다.

시간 내서 1월의 위치가 바뀐 시기에 대해 삼국시대 연력표에 나온 대로 간지달력 자료를 수정해야겠다. 총 29년 정도에서 음력 월일만 차이가 난다. 일진은 어차피 계산에 의해 나오는 거라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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