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림에 나온 선들은 일식이 지나간 자취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저 선이 나타내는 좁고 긴 면적(붉은 선)은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지역을 그려놓은 것이다. 부분일식을 볼 수 있는 영역까지 그려넣으면 일식을 관측할 수 있는 지역은 굉장히 넓어진다.
황당한 것은 천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이 저 선이 한반도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일식을 볼 수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링크의 동영상에서는 그런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양자강 유역에서만 저 일식들을 관측 가능하고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에 신라는 중국땅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의외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창범이라는 천문학과 교수도 이와 비슷한 논문을 낸 적이 있다. 신라의 기록에 나온 일식 최적관측지가 양자강 유역라는 이유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최적관측지란 다른 지역들보다 일식이 많이 이루어진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최적관측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일식 관측은 가능하다.
최적관측지란 고대의 기록에 나온 표현도 아니고 박창범이 주장한 표현이다. 실제 고대의 일식 기록을 보면 일식이란 사건에 대한 서술이 굉장히 단순하게 적혀 있다.
예)
四年夏四月辛丑朔日有食之.
4년(B.C. 54) 여름 4월 신축(辛丑) 초하루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예에서 보듯 단순히 저렇게만 적혀 있다. 어느 정도로 해가 가렸는 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그런 기록만 가지고 어떻게 최적관측지에서만 일식 관측이 행해졌는지 알 수 있느냔 말이다.
저 당시에는 망원경이나 유리도 없었기 때문에 관찰이 쉽지도 않았다. 미리 계산해서 예측하고 일식이 일어나는 날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지나치기도 십상이었다. 살짝 가려진 정도만으로는 일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땅 위에 비춰진 해의 밝기 정도로는 알기 어렵다. 아주 가늘게 눈을 뜨고 해를 보면 맨눈으로도 관찰은 가능하다. 하지만 매일 그러고 해를 바라볼 수는 없으니 예측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소위 국뽕족들은 일식 기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탕으로 신라가 중국땅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