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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1.17 12:03 | 2,113 hit

토정비결 누구의 작품인가
“이지함이 저자 아니다”


윤태현 慧誠역학원 원장



정초면 새해 운수보기로 많이 참고하는 “토정비결”은 과연 토정 이지함의
작품인가. “토정비결”은 주역과 어떤 관계인가. 또 천문·지리·복서 등에
뛰어났던 토정이 남긴 “토정가장결”과 “월영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개인이나 가족의 운수를 알아보기 위해 토정비결을 본다. 요즘처럼 살기 힘들 때는 더욱 역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 인지 상정이다.

우리는 예부터 정초 신수에 참고하는 “토정비결”의 저자를 이지함 선생으로 알고 있다. 호가 토정(土亭)인 이지함이 마을사람들에게 길흉화복을 봐주던 것을 책으로 엮어냈다는 것이 전하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또“토정비결”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아니, 역학은 믿을 만한 것일까. 역학의 발생과정부터 차근차근 알아본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불안 초조해한다. 선사시대에는 요즘처럼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았고 과학적인 지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의 재앙인 천둥·벼락·한발·질병이나 화재·산불에 대해 특히 두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정초나 추수가 끝나면 하늘에 재앙이 없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때 족장이나 제사장은 목욕재계하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달라고 점을 쳤다. 그래서 점괘가 나오는 대로 따랐고, 재앙이 일어날 것에 대비했다. 이렇게 수백 수천년을 경험하다 보면 어떤 원리나 통계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역학(易學), 즉 주역(周易)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다. 따라서 역(易)이란 미래를 알려고 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 점을 치는
학문이다. 그러면 미래를 예견하려는 학문에 대하여 알아보자.

역학은 미래 예견 학문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 보면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고, 이것은
양의(兩儀·음양)를 생(生)하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생(生)하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생하고 팔괘를 겹치면 길흉(吉凶)이 정해지며 길흉(吉凶)으로 대업을 만들 수 있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고 씌어 있다.

주역의 근간이 되는 것이 소성괘(小成卦)와 팔괘(八卦)다. 이는 하늘을 의미하는
건(乾)괘, 땅을 의미하는 곤(坤)괘, 물을 의미하는 감(坎)괘, 불을 의미하는 이(離)괘, 연못을 의미하는 택(澤)괘, 우레를 의미하는 진(震)괘, 바람을 의미하는 손(巽)괘, 산을 의미하는 간(艮)괘 등 여덟괘가 있다. 소성괘·팔괘를 중첩하면 대성괘(大成卦) 64괘(8×8=64)가 되는데 이것으로 길흉을 알 수 있다.

64괘는 각각 여섯개의 효(爻)를 가지고 있어 총 3백84효(8×8×6=384)가 된다. 8괘로 상(象)을 만들고 이를 중첩하여 64괘를 최초로 만들어 길흉을 판단한 사람은 복희씨(伏羲氏)다. 그는 지금부터 6천7백여년 전 사람이다. 그런데 3백84효를 만들고 이 효에 괘사를 붙인 사람은 주문왕이다. 그는 3천2백여년 전인 BC 1136년대의 인물이다. 그후 주역은 공자에 와서 괘사와 십익을 집대성하여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면서 계속 발전했다.

다른 한편 음양오행설도 같이 발전한다. 음양(陰陽)을 양의(兩儀)라고 하는데
음(陰)은 여성스럽고 유약하며 여자 등을 말하고 양(陽)은 강건하고 높고 크고 남자 등을 말한다.

오행(五行)이란 木(나무) 火(불) 土(흙) 金(쇠) 水(물)를 말한다. 이에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있다. 상생은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 등을 말하고, 상극은 土剋水 水剋火 火剋金 金剋木 木剋土를 말한다.
황제가 반란을 일으킨 치우를 주살하고 목욕재계하니 하늘에서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십간(十干)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말하고 십이지(十二支)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말한다.

십간과 십이지는 음양오행으로 정해지며 천간과 지지를 배합하면 60개가 되는데
이를 60갑자라고 말한다.

황제(黃帝)시대에 비로소 문자(文字)가 생겼으므로 이때부터 일진(日辰)을 쓰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일진을 사용한다. 어느 시점에서도 어느해(年) 어느달(月)
어느날(日辰), 어느시(時)를 60갑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四柱라고 한다.

사람이 꼭 태어나야만 사주가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시점에서나 사주를 뽑을 수 있다. 어떤 해의 60갑자를 연주(年柱), 달의 그것을 월주(月柱), 날과 시의 그것을 일주(日柱)와 시주(時柱)라고 하는데 이를 네개의 주(柱)라 하여 사주(四柱)라고 한다. 그리고 연주에서 천간(天干)을 연간(年干), 지지(地支)를 연지(年支)라 하며 어느날의 천간을 일간(日干), 지지를 일지(日支)라고 한다.

이렇게 각주(各柱)마다 두개의 글자가 있어 총 여덟개의 글자가 돼 팔자(八字)라고 하며, 통틀어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음양오행설은 중국 한대에 상극이나 상생, 방위, 풍수지리에서 쓰일 정도로 인간의 운명을 아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주만물의 이치로 자리잡았고, 주역에 음양오행설을 첨가하는 상수역학(象數易學)이 발전하게 됐다. 그러다가 당(唐)대에 들어 연지, 즉 띠를 중심으로 길흉을 알아보는 당사주(唐四柱)가 선보여 일반인에게 인기가 있었다. 당사주는 현재도 일부 무당들이 이용하나 이론적 근거가 미약하다.
예를 들어 쥐띠라면 전체 인구의 12분의1인데 어떻게 쥐해에 태어난 사람의 운명이 똑같을 수 있는가.

음양오행설은 우주만물의 이치

그래서 이를 더 연구 발전시킨 분이 북송(北宋)대의 서자평(徐子平)이다. 서자평은“연해자평”이라는 책을 지었는데 이 책이 사주에 관한 학문의 종주(宗主)다.“연해자평”은 태어난 날의 천간, 즉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했는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밀하여 오늘날에도 역학가들이 숭상하고 있다. 이를
명리학(命理學)이라 한다.

기문둔갑(奇門遁甲)은 한고조를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자방(張良)이 그의 스승인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주역에서는 이를 도서학(圖書學)이라 한다.

이는 사주를 뽑아 천간은 천간수끼리 더하고, 지지는 지지수끼리 더하여 9로 나누면 중궁수(中宮數)가 되는데 천간을 천반수(天盤數) 지지를 지반수(地盤數)라 하며, 지반수가 중심이 된다. 이는 사람의 운세나 천재지변, 국운, 각 지역 대소사,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토정은 서화담(徐敬德)에게 학문을 배웠다. 서화담은 조선조 중기의 성리학자로 주로 장재(張載·호는 橫渠)의 영향을 받아 기일원론을 주장했고, 사서오경과
천문·지리·술수·역학에 능통했다. 서화담은 토정과 함께“홍연진결”(洪烟眞訣)이라는 역학책을 지었는데 이는 기문둔갑을 우리나라의 도수(度數)에 맞게 수정한 것으로 육친관계, 즉 부모, 처·자식, 형제 등의 덕의 유무와 재산·수명·성품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토정의 저서로는 “월영도”(月影圖)가 있다. 이는 “주역”과 “홍연진결”을
종합한 것으로 현재까지 전하는데, 미래를 아는 책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 책의 장구(章句)중 제15구를 보면 “그대 성을 묻는데 한씨 후손이다”(問君何姓
韓氏之後), 이렇게 사주를 뽑자마자 성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집에서 처를 구할까, 한씨 집 딸이다. 처궁은 이복동생이 있다.”(雁于何門有女韓家 雁宮如何 異腹可知)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가. 처가 한씨인데 이복 형제가 있다는 말이다.

“산통을 몸에 매고 있으니 시장에서 점을 치는 사람이다.”(擲筒隨筒 賣卜於市) 이는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냐 어머니냐, 광기나 객기로 불쌍하다.”(父兮母兮狂客可憐) 부모 중에 미친 사람이 한 사람 있다는 것이다.

“침과 약으로 병을 고치니 활인이 아주 많다.”(針藥救病 活人甚多) 병을 끼고
산다는 것이다.

“귀신이 처궁에서 춤을 추니 무당첩이 있음을 알 것이다.”(鬼舞荊園 巫妾可知)“처궁에 살(殺)이 끼었으니 중풍에 걸려 한번 놀라는 일이 있을 것이다.”(琴宮有殺一警風症)

“재앙성이 문을 비추니 병으로 손재수가 있다.”(星照門 因病損財)

이렇게 “월영도”를 보면 본인과 처의 성과 첩이 있나 없나, 부모 형제관계 심지어 어머니 성씨, 산소문제, 직업, 친구 등 총체적인 운을 알 수 있고 매년 길흉을 알 수있는 것이다. “월영도”는 토정의 독창적인 역학서다. 그런데 “월영도”는 풀기가 어려워 몇사람만이 풀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강모씨가 정확하게 풀었고 현재 이를 푼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미약하다.

토정은 글을 써서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문집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후손이 토정의 자료를 모아 “토정집”이라고 묶어 전해오는 것이 전부다. 토정은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라는 비책을 지어 병란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두고 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 글을 보면 국란은 갑자진(甲子辰)년에 일어난다고 했다.

또 철마가 다니고 번개선이 지나가면 고향을 떠나라고 적혀 있다. 과연 토정의 예언대로 임진년에 왜구가 침범했고 병자년에 호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철마 즉 기차가 지나가고, 번개선 즉 고압송전선이 지나고 나서 6·25 전쟁이 일어나 그 동리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욕심 내지 않는 게 제일 부자’

토정은 수양론(修養論)을 주장한다. 이는 마음을 수양하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맹자의 과욕론(寡慾說)을 따랐다. 그리고 욕심을 적게 하고 또 적게 하면 나중에 무(無)에 이르게 되는데 이 무의 심정은 마음이 비어서 신령스럽게 된다고 한다. 이 신령스러운 영(靈)의 비침이 명(明)이 되고, 명(明)의 열매가 성(誠)이며, 성(誠)의 길이 중(中)이 되고, 중의 발달이 화(和)가 된다. 중화(中和)가 바로 공평의 아버지며 생(生)의 어머니인 것이다.

정성을 다하고 마음이 넓으며 꾸밈이 없어야 한다. 꾸밈이 있으면 작아지고,
작아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꾸 더 작아지면 사람도 더 작아져 나만 알고 남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소인배가 된다고 토정은 자기 수양론을 얘기한다. 그래서 수양한 사람은 부귀영화와 멀어져 자기 자신을 찾는다고 하여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부자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제일 부자요, 귀한 사람은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귀한 것이요, 강한 것은 다투지 않는 것이 제일 강한 것이며, 영험(靈驗)한 것은 모르는 것이 제일 영험한 것이다.”(富莫富於不貪 貴莫貴於不爵 强莫强於不爭靈莫靈於不知)

이처럼 부귀영화의 개인적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격을 갖췄기 때문에 이지함은 인간의 길흉을 보는 능력이 생겼을 것이다. 마음 속에 욕심이 있으면 크게 보지 못하는 법이다. 토정이 능력을 갖췄다는 명성이 이어졌기 때문에 “토정비결”은 지금까지 토정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토정비결”은 토정의 작품이 아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토정 사후 2백년 지나 토정비결 봤다는 기록

주역의 근본원리는 상괘(上卦)가 8, 하괘(下卦)가 8, 변효가 6, 그래서 총
3백84수(8×8×6=384)가 정통이론이다. 그런데 “토정비결”은 상괘가 8, 중괘가 6, 하괘가 3, 그래서 총 1백44수(8×6×3=144)가 돼 주역에 비해 2백40수나 부족하다. “토정비결”은 토정의 저서인 “월영도”에 비하면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해설한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월영도는
“주역”과 “홍연진결”을 종합한 것이니 “월영도”가 “홍연진결”이나
“주역”보다 한수 위인 역학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월영도”는 푸는 방법이 어려워 보통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월영도를 모방한 주역서를 만들어 토정의 이름을 가탁하여 토정비결이라고 했을 확률이 제일 크다.

또 한가지. 토정이 살던 시대의 생활풍습을 기록한 “동도잡기”(東都雜記)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그 시대에 정초가 되면 명리학인 오행으로 점을 쳤다는 얘기는 있으나 “토정비결”로 1년 신수를 보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다가 토정 사후 2백여년이 지나서야 정초가 되면 “토정비결”로 한해의 운수를 점쳤다는 기록으로 봐도 “토정비결”은 토정의 저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토정비결”은 사람들에게 근신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토정비결의
내용이 나쁘더라도 조심하면 큰 액을 면하고, 비록 좋은 괘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노력이나 근신하지 않는다면 좋은 것이 없다는 인간론을 거론했다. “토정비결”이 토정의 작품은 아니지만 토정이 의도했던 바대로 백성의 편안한 생활, 욕심없는 건전한 생활을 장려한 점에서는 의미가 충분하다고 본다.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부탁드린 내용, 바쁘시겠지만 회신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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