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주를 일종의 불변의
정해진 운명을 알아내는데에만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주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사주를
그렇다고 알고 있죠.
이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사주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를 분명히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사주에서 읽어지는 개인에 관한 내용이나
개인이 흐르는 운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은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반드시!"라고 말할수 있는 "특정한 결과"는
사주에서는 읽어낼수 없습니다.
사주에서 "반드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예를들어 "갑"이란 사람이 오늘 사고를 당할 일진이라
생각을 해 봅시다.
그래서 그는 다칠까봐 집밖에는 나가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과일을 먹다 포크에 찔렸읍니다.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주학 책에서 접할수 있는 것들, 예를들면-"살"과
같은 것들은 많은 논리가 숨어있는 결과입니다.
옛날과 같은 폐쇄되고 정체된 질서의 사회에서는
원인은 하나의 결과를 낳을수 밖에 없기때문에
사주학에서 결과를 쉽게 언급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상황이 다르죠.
사주에서 나오는 "궁합"이 안 좋은 사람들은
분명히 성격차이나 가치관 혹은 두 사람의 관계를
나쁘게 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두 사람이 반드시 관계를
끊는다는 보장은 없죠.
단지 궁합은 과거의 시대에서 개인중심적으로 생각한
논리의 결과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것이 예측된 결과와 틀리다고 해서 사주가
모두 미신인냥 생각하는 것은 비약입니다.
사주는 믿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사주"는 생년월일시를 말할 뿐 원래의
명칭은 "명리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