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숙명 말들은 많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잡아낼 수는 아
직 없습니다. 다만, 사람을 예로 들면, 삶에 어떤 패턴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걸어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고 가정을 하는 것이지요. 일단 패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패턴을 만들어내는 궁극적 힘
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근본적 관점
에서 운명이나 숙명을 다룰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그 패턴을 분석하는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이고 또 다른 결과들이 유도
될수 있는 것입니다.
힘(힘이라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의 원천을 모르고서는 무엇이(예를
들어 사주) 인생에 몇 %의 영향을 미친다라는 표현은 부정확한 것이지요.
운명 = 노력 + 환경 + 사주 + 이름 + 관상 + 수상. 과 같이 정의 한다면
사주는 몇 % 정도 차지 하겠지요. 그런데 이는 상당히 주관적 발상입니
다. 아프리카 같은 경우 그 동네는 관상, 수상, 사주, 성명학 같은 것
도 없는데 운명을 어떤 변수들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이는 관점을
바꿔서 보아야합니다. 예를 들어, "사주학은 사람의 삶의 패턴을 어느
정도의 정확성으로 예측할 수 있는가?" 뭐 이런 화두를 생각해야겠지요.
따라서 사주가 인생에 30%의 영향을 미친다 100%를 미친다는 것은 다분
히 주관적입니다. 삶의 패턴은 분명 있지만 그것의 원천이 사주는 아니
고 사주는 다만 그 패턴을 분석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
직 사주(타 학문도 마찬가지지만)는 삶을 100%의 정확도로 분석할 수도
없을 뿐더러 100%란 절대 불가능하니 사주가 불길하다해서 자포자기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유의
지적 표현이지요. 그렇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조율이 존재 합니다.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에는 불확정적인
관계가 존재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
에 글을 쓰기로 하지요.
다만 이것만 알고 계십시오. 길운일 때는 그 만큼 활동(노력)을 해야 길
운의 덕을 크게 받을 수 있고, 흉운일 때는 조신해야 흉을 줄일 수 있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