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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해석 지수師괘 이효
05.06.10 08:40 | 1,502 hit

* 882 地之師卦(지지사괘)
飛神(비신)



卯 午 世
巳 辰 動
未 寅

九二(구이)는 在師(재사)하야 中(중)할새 吉(길)코 无咎(무구)하니 王三錫命(왕
삼석명)이로다 [本義(본의)]在師中(재사중) 하야
* 구이는 군사들을 존재케하여 그 가운데 함일새 길하고 별허물 없으니 왕이
세 번씩이나 명령을 내리시도다, 본래의 뜻은 군사들 가운데 있어야.....,
* 군사들이 中道(중도)를 행함일세 길하여 허물없음인 지라 왕께서 세 번씩니
아 접전하라고 명령을 내리시다

九二(구이)가 아랫자리에 있으면서도 모든 음효들이 돌아가는 바 되고, 剛中(강
중)의 덕을 갖고선 上(상)으로 六五(육오)에 호응하여서 총애함의 신임을 받는
지라 그러므로 그 형상 하는 점이 이와 같다

象曰在師中吉(상왈재사중길) 은 承天寵也(승천총야)-오 王三錫命(왕삼석명) 은
懷萬邦也(회만방야)-라
상에 말하길 군사들 속에 있어 길하다함은 하늘의 총애함을 승계함인 것이오 왕
이 세 번씩이나 명령을 내리신다함은 일만의 나라를 품게 함이나리라

*傳(전)에하길 군사들 속에 있어서 길하다하는 것은 그 하늘의 총애하는 신임
을 승계한 것이다 天(천)은 여기서 하늘을 말한다 사람의 신하된 도리로써 인
군이 寵任(총임)하지 않으면 어떻게 오로지 정벌하는 권력을 얻어서 성공하는
길한 상을 가질 것인가 二爻(이효) 오로지 그일을 주관하게 하는지라 그러므
로 이러한 뜻을 일으키어선 앞의 先覺(선각) 儒生(유생)들이 보는 바와 다른 견
해를 내어놓는 것이라 할 것이다 왕이 세 번 씩이나 은혜로운 명령을 내리신다
함은 그 성공함을 포장하여서 소이 威名(위명)으로 만방을 품게 하는 것이다,하
였다. 褒字(포자)는 포도라는 의미도 있는데 청포도도 맛있지만 검은 포도도
맛이 있는데 [검은색을 띠고 있다= 우리는 검은색을 그 밝지 못한 일에 비유한
다]이것은 그 故事(고사) 幽(유)王(왕)과 褒似(포사)의 일을 경게하는 말 같다
유왕이 미인 褒似(포사)에 빠져 봉화놀이에 정사를 그르쳐선 그 나라를 잃게 되
었다는 것이다 맨 군사 모여 들게하는 군사 소집방법을 갖고선 계집놀이에 빠
졌다는 이야기인데 결국 군사는 기강이 해이해지면 패전하고 나라 붕괴 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 寅(인)이 사촌동기 卯(묘)의 기운을 당겨 받는 와중에 세주 회두생을 입고 세
주死地(사지) 서방을 卯字(묘자)가 충파 시킬 것이라 이래 길하고 허물없다 할
것이다

* 變卦(변괘) 地水師卦(지수사괘) 二爻動(이효동)으로 보면 師(사)는 전쟁을
하려고 군사 무리를 일으키고 병력을 동원하는 모습이다 군대를 동원하는 일
은 대의명분이 뚜렷한 곧은 일에만 적당하다 할 것이니 그 적임자를 채택하대
그 방면에 능사가 났거나 아님 大軍(대군)을 잘 통솔하고 지휘할 수 있는 제
반 덕이 있다 칭송하는 자라야만이 그 일을 잘 해낼 것이라 길하고 별 허물없
을 것이다 괘생긴 형태를 볼 것 같으면 九二(구이)가 二位(이위) 中道(중도)
를 차지하여 衆陰(중음)을 거느린 象(상)이 마치 將帥(장수)가 將卒(장졸)들을
거느린 상태를 그려준다는 것이니 장수가 內卦(내괘) 軍幕(군막) 가운데 坐定
(좌정)하여 있고 그 장졸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
* 세주 예기 辰(진)을 북돋는 동작은 그만큼 예기 날카롭게 하여선 적을 제압
할수 있게 한다는 것이리라 卯根(묘근)을 가진 巳午(사오)가 未辰(미진)에게 힘
을 설기하면 寅(인)이 받아먹는 형태인데 此寅(차인)이 未(미)를 進頭克(진두
극)하면 그 전 力量(역량)이 辰(진)에게 실리는 형세라 이래 辰(진)을 북돋
는 것이 되므로 세주 예기 辰(진)이 날카롭게 된다는 것이라 마치 날을 세운 대
장 빛나는 偃月靑龍刀(언월청룡도) 처럼 말이다

彖辭(단사)에 하길 師(사)는 群衆(군중)集團(집단)을 말하는 것이요 [* 一例(일
예)로 군대의 병력단위를 군단 사단 여단 연대 대대 등으로 칭할 적에 그러한
군중집단의 단계를 말하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니까 많은 군중이 모인 것을 가
리킨다하리라 ] 곧음은 바르다는 것이니 잘 軍衆(군중)을 바르게 함으로써 바르
게 王者(왕자)天下(천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강함이 가운데를 차지하
여 호응을 받고 이것은 九二(구이)가 不正(부정)하지만 中道(중도)를 차지하
여, 不正(부정)하지만 六五(육오)의 呼應(호응)을 받는 것을 말함이다 전쟁이
란 비상시국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한 비상시국의 어려운때는 그 위치가 바를수
없는 것이다 또 그 위치가 바른 것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 莫重(막중)한 責務(책무)를 걺어지게 되는지라 그 中道(중도)를 차지
하여 전체군중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어선 전쟁에 돌입하게되는 것이라 그 자
리 정당함을 논할 계제가 아니고 그 얼마나 가운데를 차지하여[所謂(소위) 適中
律(적중률)이 높을수록 勝算(승산)이 있는 싸움이 된다 ] 諸軍(제군)들을 통솔
할 능력이 있는가를 갖고 승패를 판가름한다할 것이다 험난함으로 행하여도
유순하게 쫓게되는 것이니 此(차) 天下(천하)에 害毒(해독)을 끼쳐도 백성들
이 쫓게되는지라 길할 것인데 또 무슨 탈잡을 일 있겠는가 하였다 所以(소이)
戰術(전술)에는 奇詭(기궤)한 妙策(묘책)이 있어야만 승리하는 것으로써 그러
한 방법은 모두 斜則(사칙)된 奇巧(기교)에서 나오는 것이지 정당하다하는 드러
내 놓고 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란 것이다

象辭(상사)에서는 땅 가운데 물이 고여 있음이 군중집단의 모습 군사들의 형상
이니 君子(군자)는 이러한 형상을 잘 보고 실생활에 응용하여 쓰대 백성을 드
넓은 포용력으로 수용하며 群衆(군중)을 養育(양육)하나니라 하였다
이러한 時象(시상)을 당도하여 九二(구이)動作(동작)은 군중집단의 존재 그
가운데 임일새 길하고 허물없으리니 王(왕)께서 세 번씩이나 주는 명령을 하
시도다 하였다 錫命(석명)은 그 공로가 있으면 훈장을 수여하는 의식 명령이라
는 것이다 九二(구이)가 不正(부정)하지만 內卦(내괘)의 中道(중도)를 차지하
여 六五(육오)의 呼應(호응)을 받는지라 이래 爻辭(효사)와 같은 말을 하는데
將帥(장수)가 아주 要地(요지)에 있으면서 군대를 통솔하는 지라 그래 戰果(전
과)가 있을 적마다 그 六五(육오)呼應(호응) 하는 女王(여왕)께서 그 功勞(공
로)를 致賀(치하)한다는 것이다 戰果(전과)란는 것은 다름아니라 앞에선 諸
(제) 陰爻(음효)들중 대상 호응하는 六五(육오) 女王(여왕)을 除外(제외)하고
는 모두가 세陰爻(음효)가 되는데 이는 지방 호족세력과 같은지라 이러한 호족
세력들도 잘 회유시켜 거느려보라는 것이다 그리되면 나라에 안전을 도모 할수
있음인지라 이래 왕께서 그 공로를 치하하게된다는 것이다 마치 王建(왕건)이
나라를 세울적에 지방 토호세력들의 힘을 규합하고 또 어루만져서 그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 할 것이니 정실황후 이외에 土豪(토호)세력들의
딸들을 上納(상납) 받아 첩실을 많이 거느리는 것과 같다하리라 소이 一陽(일
양)이 내괘 中道(중도)를 차지하여 諸陰爻(제음효) 죽들과 돌아가면서 음양배합
의 죽을 맞춰본다는 의미이리라
* 飛神(비신)을 보면 세겹元嗔(원진) 卦(괘)가 六 (육충)으로 돌아서니 그 備
蓄(비축)해논 것을 풀어쓰는 것이라 그 길함을 말 아니해도 알만하리라 二位
(이위) 辰字(진자)가 동작하여 회두생 받는 모습이니 初位(초위)寅字(인자)가
進頭剋(진두극)하여 未字(미자)比肩(비견)을 눌러줌에 그리로 흐르던 巳字(사
자)의 역량이 모두 二位(이위) 辰字(진자)로 쏠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
되면 動主(동주)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곤 初位(초위) 寅字(인자)가 對相
(대상)을 剋制(극제)해야 함에도 不拘(불구)하고 辰未(진미)를 牽制(견제)한다
면 그 劫財(겁재) 卯字(묘자)를 근기로 둔 巳午(사오)가 膨大(팽대)해질 것이라
는 것이다 巳午(사오)膨大(팽대)는 世主(세주)力量(역량)을 부추겨놓는 것이
니 나쁘지 않다 하리라 內外卦(내외괘)가 주고 받게되니 體用(체용)이 土克水
(토극수)라 한번 내쪽으로 牽制(견제)받으면 飛神(비신)세운 것은 外爻(외효)
對相(대상)飛神(비신)들을 剋制(극제)하는 지라 이번에는 그 前途(전도)되어 剋
(극)하는 것이니 주고받는 것이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세주 喪門(상문)이 동
작한 것이니 깃거워 할 사항만은 아닌 것이다 전쟁은 원래 사람이 많이 喪(상)
하는지라 그 윗된자가 初喪(초상)의 예의로서 전쟁을 치룬다는 故事(고사)가 있
다 이처럼 喪門(상문)動作(동작)은 그 세주에게 불리한 것을 알만하다 하리라
辰字(진자)는 世主(세주) 洩氣者(설기자)요 世主(세주)를 根氣(근기)로 둔 자이
다 이러한 자가 발동한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狀況(상황)은 아니란 것이다 그렇
다해도 길하고 戰果功勞(전과공로) 있음을 말하는 것은 그 飛神(비신)이 회두
생을 받아 外部(외부)에서 들어오는 힘을 얻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所以(소이)
將帥(장수)가 中道(중도)를 차지하게됨으로서 戰勝(전승)을 하게되어 戰利品(전
리품)을 얻게된다는 것이리라
* 비신이 대극을 하는 상항[적세 제압하는 형태]에서 장수효가 동작하여선 卯巳
(묘사)를 통하여 기운을 당겨 받는다는 것은 나쁜 상항이 아니란 것이리라 酉亥
(유해) 적장이 卯巳(묘사)를 먹으려 들어와선 잡히는 상태 亥(해)는 辰未(진미)
에 잡혀 寅(인)에 붙고 酉(유)는 巳午(사오)에 잡혀 辰(진)에 붙는다는 것은 비
신 구조상 세주나 장수효에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리라 삼위동작은 원진 접전이
라 꼬나든 창의 접착이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치 않다는 것이다 원진은 찾아볼래
야 안에선 없고 삼형 구조도 유리하게 한다는 것이고 丑午(축오) 원진은 초전
에 적과의 대치 상태를 그리는 것을 말한다 하리라 왕이 세 번씩 장수에게 명
령을 내려 적과 교전하라 한다는 것은 그 승리할 확신을 세웠기 때문이다 내의
비신기둥이 힘을 얻음에 외비신 셋을 대극으로 확실하게 제압한다는 것이다 적
장을 사로잡아 세주위가 대상財地(재지) 태세로 돌아가선 그 財(재)의 디딤돌
충발을 받게될 것이라 이것은 크게 戰功(전공)을 올린 모습이다

* 팔월괘이면 流年變卦(유년변괘)가 낱알괘이니 맨 師卦(사괘)일 것이라 三位
(삼위)午字(오자)動作(동작)은 지금 二位(이위) 喪門(상문)이 動作(동작)한 형
세에서 그 뿌리로 있는 世主爻(세주효)가 또 動作(동작)한다는 것은 지금 對相
(대상) 酉字(유자)를 보고 있는 중인데 此(차) 酉字(유자)는 들어오는 세주곁
의 世主(세주)根氣(근기) 될말만한 자를 到 破(도충파) 하는지라 그런데 다시
세주가 動作(동작)하여 그 먹이 酉字(유자)를 문다는 것은 자신의 根氣(근기)卯
字(묘자)를  剋破(충극파)할 것이 십중팔구가 된다는 것이니 마음이 심란하
고 흐트러지니 損財(손재)가 아니면 몸에 병이날 것이라는 것이요 官鬼(관귀)
水性(수성)의 根氣(근기)를 먹이라고 건드리는 바라 어찌 官(관)處(처)에서 가
만히 있겠는가 이다 그러니까 혹여 재물을 취득하느라고 하는데는 내가 財性(재
성)을 그 制(제)하여 들이는 모습이라서 별 허물이 않된다 할는지 모르지만 그
잘못하다간 그 관청에 비위를 건드리는 행위나 일을 그릇치는 작용을 하게된다
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함을 조심하라하였다 所以(소이) 地,師,升(지사승)
구조는 나쁘다는 것이다

初位(초위)寅字(인자)動作(동작) 巳字(사자)三刑生(삼형생)하는 구조는 역시 좋
지 못한 말을 하게 되는데 巳卯丑(사묘축)이 접속 된다면 세주는 元嗔(원진)
을 만나는 것이고 그 비신의 엇비슴 작용을 보면 세주겁재 巳字(사자)가 세주
와 그 四寸(사촌) 巳午(사오)가 洩氣(설기)해서 辰丑(진축)을 備蓄(비축)하는
것을 外部(외부)에서 오는 巳字(사자) 劫財(겁재)가 根氣(근기) 寅卯(인묘)를
口化(구화)하여 辰丑(진축)을 뜯어먹어선 자신에게 그 기운을 돌리는 모습인지
라 이래 좋다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要(요)는 들어오는 巳卯丑(사묘축)이
本然(본연)에 動(동)해  發(충발)을 놓는 未巳卯(미사묘) 구조중 未字(미자)
를 도우는 形勢(형세)를 짓는지라 午辰(오진)에게는 불리한 형세라는 것이요 외
부효 酉亥丑(유해축)을 활용을 하기를 그 대상 생들을 함으로 인해서 卯字(묘
자) 後世主(후세주)가 應生(응생)을 받는 구조로 되는 지라 亦是(역시)前世主
(전세주)가 있는 비신 기둥 寅辰午(인진오)가 그 대상 먹이를 앗기우는 형세가
된다는 것이다 所以(소이) 巳酉丑(사유축)을 지어 亥字(해자)에다 설기 힘을
실으면 卯字(묘자)가 그 대상으로 받아먹는 형세가 되는데 卯字(묘자)는 역시
巳字(사자)를 늘어트리고 있음이라 여지껏 役割(역할)은 巳(사)의 根氣(근기)
가 되는 작용을 하는데 巳字(사자)는 外部(외부)에서 세주역량을 앗을려고 들어
온 世主(세주)午字(오자)의 劫財(겁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니 좋은 말을 할
턱이 없다 兄弟之間(형제지간)이나 家內(가내)憂患(우환)이요 안으로 봉죽 해
야할 辰字(진자)가 본연에 動主(동주)로 동작한 것이라 家母(가모)의 근심이요
그 喪門(상문)이 원래 動(동)한 것이라 服制(복제)가 두렵다하고 그 中心(중심)
이 근심을 품어서 우중충하다하였다 노인네 나이 많으셔서 돌아가시면 好喪
(호상)이 되거니와 다른 나쁜일이 있을가 염려하는 것이리라

이월괘 이면 流年變卦(유년변괘)가 歸妹(귀매)가될 것이니 三位(삼위)丑字(축
자)動作(동작)은 성욕에 굶주린 홀 아비가가 과부를 맞이하는 격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劫財(겁재)의 弄奸(농간)으로 들어온 三刑(삼형)
戌字(술자)를 보고 있는 世主(세주)元嗔(원진) 丑(축)이 動作(동작)한 것이라
좋지 않다 하겠지만 이것이 遁甲(둔갑)하여 辰字(진자) 됨에 元嗔(원진)이 作破
(작파)를 만나 깨어진 모습이요 弄奸(농간)을 부리던 劫財(겁재)는 回頭剋(회두
극)을 맞고 그 根氣(근기)卯字(묘자)는 衰退(쇠퇴) 寅字(인자)하여 對相爻(대상
효) 들과 六合(육합)을 이루니 世主對相(세주대상) 飛神(비신)들 所以(소이) 世
主(세주)먹이가 적합을 이루어 肥大(비대)해진 狀況(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러니 좋지 않고 베길 것인가 이다 子寅辰(자인진)과 未巳卯(미사묘)를 옆에다
놓고 접속시켜보면 분명 忌神(기신)을 제거시켜 辰字(진자)가 좋아지는 모습인
데 辰字(진자)는 動主(동주)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비신배열 구조상 삼위로 나아
가 있어선 그 對相(대상) 酉字(유자)와 適合(적합)을 이루는지라 소이 세주먹이
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六 (육충)과 六合(육합)이 어느 것이 먼저이냐에
달려서 길흉이 판별된다 하겠지만 子寅辰(자인진) 丑亥酉(축해유)로 서서 세주
기둥 寅辰午(인진오)의 먹이 합을 잘 이루어논 것을 未巳卯(미사묘)가 六 (육
충)을 놓는 것이라 한다면 그 豊饒(풍요)롭게 한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니까 세
겹元嗔(원진)과 六合(육합)을 到 (도충)으로 한꺼번에 풀어쓰는 것이 된다는
것이리라 운수대통 재수대통 金水(금수)方(방)에 所願成就(소원성취)한다하였

二位(이위)卯字(묘자) 動作(동작)하여 寅字(인자) 衰退(쇠퇴)하는 形勢(형세)
는 그 飛神(비신)이 앞서와 같이 서도 流年卦(유년괘)가 틀려 돈다 소이 앞서
는 陽氣爻(양기효) 들어차지만 지금爻(효)는 陽氣爻(양기효) 脫落(탈락)이라
이래 아주 나쁘다한다 所以(소이) 地(지)師(사) 歸妹(귀매)大壯(대장)은 吉
(길)하고 地(지) 師(사) 歸妹(귀매) 雷卦(뇌괘)는 不吉(불길)하다는 것이다 앞
서는 辰字(진자)爲主(위주)이지만 이제는 卯字(묘자)爲主(위주)라 對相(대상)
元嗔(원진) 申字(신자)를 보고 있는 世主(세주)根氣(근기) 卯字(묘자)가 衰退
(쇠퇴)하는 경향을 짓는지라 배를 주리고 추위에 떤다 모든 일은 되지 않고
그 늘어트린 巳字(사자) 세주劫財(겁재) 他人(타인)으로 인하여 골탕을 먹는 운
세이니 그런자를 근접하게 하면 거꾸로 六 (육충)이 六合(육합)으로 시든다는
것이리라
初位(초위) 巳字(사자)動作(동작) 寅字(인자) 三刑(삼형)으로 歸化(귀화)되는
모습을 짓는 것 역시 길치 못하다 하였는데 四位(사위)에서 元嗔(원진)으로 들
어온 世主比肩(세주비견)을 그 對相(대상)으로 하고 있는 初位(초위)巳字(사
자) 世主(세주)劫財(겁재) 動作(동작)은 세주 그림자와 같은 형을 들어 세우는
지라 이것이 妖怪(요괴) 작난과 같이 行勢(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보
고 먹을 것이라고 헛 손질 하는 형세이니 빈손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妖
魔(요마) 작당하니 일을 여러 군데로 벌리고선 成事(성사)는 아니시키고 고단
만 하게 한다하였다 劫財(겁재) 巳字(사자)로 생겨난 寅辰午(인진오) 헛도깨비
가 나의 이속을 모두 챙기니 나는 손을 허공에 젓는 바보 형세를 지을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흡사 여러 거울속에 歡迎(환영)과 같다하리라

* 故事(고사)
*포사(褒似)는 서주(西周) 12대 유왕(幽王) 희궁녈(姬宮涅)의 비이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의 신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18세기(포사가 태어나기 1천여년 전)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
王)이 재위하고 있던 어느날, 포(褒: 지금의 섬서성 포성현<褒城縣>)나라에 살
고 있던 두 백성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갑자기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하여 하
늘로 올라갔다. 그 두 마리 용은 단번에 수천리를 날아가서 하나라의 도성 짐심
(斟?: 지금의 하남성 공현)에 있던 걸왕의 궁궐에 떨어졌다. 그리고는 피로에
지쳐 입에서 침을 흘리다가 갑자기 입을 열어 "우리는 포나라의 선왕이다."고
말하였다. 겁에 질린 걸왕은 그것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죽지 않을까 두려워하
여 무당을 불러 점을 치게 하였다. 걸왕의 명을 받고 점을 친 무당은 깜짝 놀라
며 "절대 손을 대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더욱 놀란 걸왕은 그것들을 밖으
로 쫓아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무당은 "신선이 속세에 내려온 것은 길조
이니 폐하께서는 그것들의 침을 잘 간수해 두소서. 침은 용의 정기이니 그것들
을 잘 간수해두면 훗날 복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걸왕은 그것들의 침을 쟁반에 받아서 황실의 보물창고인 주거(朱?)에 보관
하였다. 그러자 그 두 마리 용은 큰 비바람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1천년이 지난 기원전 9세기 50년대 주나라 10대 여왕(?王) 말기에 이
르러 그 용의 침을 보관해 두었던 주거에서 갑자기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
을 본 담당 관리가 여왕에게 달려가서 보고하자, 여왕은 "그 속에 든 것이 무엇
이냐?"고 물었다. 관리는 주거를 열어 그 안에 있던 쟁반을 여왕에게 바쳤다.
여왕은 그 이상한 물건을 받아들고 무엇인지 몰라 두려워하다가 그만 그것을 땅
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로 이때 쟁반에서는 1천년 전에 담아두었던 용의 침
이 전혀 변하지 않은채 그대로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그 침이 자라로 변하여 정
원을 기어다녔다. 겁에 질린 여왕은 여인들에게 명하여 옷을 벗은채 자라를 둘
러싸고 고함을 지르게 하였다. 당시에는 나체의 미녀들이 사악함을 쫓아낼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갑작스런 소란에 깜짝 놀란 자라는 이리저리 기어다니다
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바로 이때 후궁에 있던 6~7세 가량의 어린 계집종이 우연히 자라의 발자국을 밟
았는데 그로부터 그녀는 갑자기 배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여왕은 그녀가 감
히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여 임신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크게 노하여 그녀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기원전 828년에 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선왕(宣王)이 왕위를 계승하
였지만, 선왕도 그녀를 석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수감된지 40년이 지나
서 그녀는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다가 계집아이 하나를 낳았다. 이에 선왕은 그
계집아이를 물속에 던져 버리라고 명했다.

임신한지 40년만에 아이를 낳는 괴이한 일을 당한 선왕은 마음이 매우 불안하였
다. 바로 이때 수도 호경(鎬京)에서는 다음과 같은 동요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
하였다.



뽕나무로 강한 활을 만들고

가는 풀로 화살통을 짜니

주나라도 더 이상 남아있지 못하리라



선왕은 크게 분노가 치밀어 뽕나무로 만든 활과 가는 풀로 짠 화살통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리고는 이렇게만 하면 주나라 왕실이 안전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한 시골 부부가 뽕나무 활과 풀로 짠 화살통을 팔려고 낙양(洛
陽)으로 갔다. 그들은 국왕이 그러한 엄중한 금령을 공포한 줄 전혀 모르고 있
었다.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병사들은 국왕의 금령을 어긴 죄로 그들을 붙잡으려
고 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남편은 재빨리 도망을 쳤으나 불행히도 그의 아
내는 병사들에게 붙잡혀서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얼마나 도주했을까? 졸지에
아내를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그 남자는 슬픔을 억누르며 홀로 한적한 강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그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거적을 하나 발견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거적에는 한 계집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전하
는 말에 의하면, 당시에 무수한 새들이 하늘을 날며 그 거적을 보호하면서 거적
의 네 모퉁이를 물고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그 남자는 거적
에 올라가서 그 계집아이를 꺼내었다. 그러나 죄인의 몸이 된 그 남자는 마땅
히 갈곳이 없었던지라 생각 끝에 포(褒)나라로 친구를 찾아갔다.



기원전 782년에 선왕이 죽음에 그의 아들 희궁녈(姬宮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
니, 그가 바로 주나라의 제12대왕 유왕(幽王)이다. 그는 신(申: 하남성 남양현<
南陽縣>)나라의 공주를 왕후로 맞아들였으며, 그후 신후(申后)는 태자 희의구
(姬宜臼)를 낳았다. 그러나 유왕은 성격이 포악하고 방탕하여 하(夏)의 걸왕(桀
王)이나 상(商)의 주왕(紂王)에 못지 않는 폭군이었다. 그는 다른 폭군들과 마
찬가지로 그에게 간언을 하는 충신들을 죽이고 미녀들을 선발하여 유희에 빠졌
다.

어느날 포나라의 제후 포향(褒향, 향=王+向)이 유왕을 알현하고 간언을 올렸다
가 유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다. 이에 포향의 친구들은 포향을 구하기 위
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뾰족한 묘수가 없었다. 포향의 아들 포홍덕(褒洪
德)은 주의 문왕(文王)이 상의 주왕을 멸망시킨 고사를 떠올리고는 각지에서 미
녀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뽕나무 활 때문에 죄인이 된 남자가 강가에
서 거두어 갔던 그 계집아이도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여 그 모집에 응했으니,
그녀가 바로 포사이다.

기원전 780년 포나라의 미녀들을 호경으로 보내자 유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특
히 유왕은 선녀처럼 아름다운 포사의 용모를 보고 더없이 흡족해 하였다. 포나
라에서 보낸 미녀들을 받아들인 후 유왕은 곧바로 포향을 석방하였다.





포사는 왕궁에 들어가자마자 뛰어난 미모와 총명한 지혜를 발휘하여 즉시 유왕
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년 후 그녀는 아들 희백복(姬伯服)을 낳았다. 이때부
터 그녀는 왕후의 자리와 태자의 자리를 탈취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때 유왕은 포사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것
이면 무엇이든 다 했다.

기원전 773년 유왕은 마침내 포사의 꾐에 말려들어 신후(申后)와 태자 희의구
를 폐한 후, 신후를 옥에 가두고 희의구를 신(申)나라로 유배시켰다. 그리고는
즉시 포사와 그녀의 아들 희백복을 각각 왕후와 태자에 책봉하였다. 이해에 포
사는 방년 20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모든 고관대작들을 피로써 물리치고 당당히
권력의 핵심에 들어섰다. 그러나 포사는 비록 조정의 대권을 모두 차지하긴 하
였지만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 유왕은 그러한 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해 백방
으로 노력하였으나 그녀는 결코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
겠으나 그녀가 웃음을 보이지 않자 유왕은 더욱 안달이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유왕은 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해 어리석기 짝이 없는 계책을 세우게 된
다. 조숙대(趙叔帶)의 반론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적이 있는 괵석보(?石父)
가 다음과 같은 계책을 올렸다.

"옛날 서쪽의 만족(蠻族)이 강성하여 자주 수도를 침범하였는데, 그들의 급습
을 방비하기 위하여 일찍이 20여개의 봉화대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봉화에 불을 붙여 불길이 하늘로 치솟으면 부근의 제후국에서 구
원병을 보내줍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여러해 동안 천하가 태평하여 그것을 사용
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왕후와 함께 여산(驪山)으로 가셔서 봉화를
올린다면 그것을 보고 주변의 제후국에서 대군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입니다. 그
들이 급히 달려와서 헛걸음치게 한 다음 그 제후들을 놀린다면 왕후께서는 반드
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왕은 과연 묘책이라 생각하고 포사를 데리고 여산으로 갔다. 여
산은 수도 호경(鎬京: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에서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
점에 있다.



☞ 여산봉화(驪山烽火)

유왕은 포사와 함께 여산에 도착한 이후 저녁이 되자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봉
화를 올리도록 명령했다. 당시에 삼군총사령관을 맡고 있던 정(鄭)나라의 제후
희우(姬友)는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황급히 행궁(行宮)으로 달려가서 유왕
을 만류하였지만 유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유왕의 명령으로 봉화가 오르자 그것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수도 부근
에 있던 제후들은 밤중에 봉화가 올랐다는 급보를 듣고 수도 호경이 오랑캐에
게 포위당한 것으로 판단, 급히 지원군을 편성하여 달려왔다. 이때 유왕과 포사
는 여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제후들의 군대가 집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즐
기고 있었다.

새벽 무렵 왕실을 구원하기 위한 제후들의 군대가 사방에서 달려와 여산 아래
에 집결하였다. 그들은 비록 밤새워 달려왔지만 그러한 피로도 잊은채 오로지
왕실을 구하겠다는 충성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여산 아래
에 도착한 이후 전열을 정비하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적들의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자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있
던 유왕은 크게 만족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무런 외침이 없었으나 내가 심심해서 한번 봉화를 올려
본 것뿐이오. 그러니 모두들 원대복귀하여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시오."



이 말을 들은 제후들과 병사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지만 사실을 알고난 이
후에는 허탈감에 빠져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본 포사는 비로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생긋 웃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유왕은 웃음이 담겨있는 포
사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여산봉
화'의 고사이다. 그후 유왕은 그러한 계책을 건의한 괵석보에게 상으로 황금 1
천냥을 하사했다.



포사의 아름다운 웃음을 본 이후 유왕은 그녀의 웃는 모습을 다시 한번 더 보
고 싶어서 봉화를 자주 올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
든 하려고 했다.

기원전 771년 유왕은 신(申)나라에 유배시켰던 태자 희의구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나라의 제후는 원래 유왕의 장인이자 희의구의 외조부였다. 그는 차
마 자기의 외손자를 죽일 수가 없었기에 유왕에게 그 일의 부당함을 알리는 상
소를 올렸다.

"옛날 하(夏)왕조의 걸왕은 말희(?喜)를 총애하여 망했고, 상(商)왕조의 주왕
은 달기를 총애하여 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포사를 총애하여 적자
를 폐하고 서자를 옹립함으로써 부부의 정은 물론 부자의 정도 끊었습니다. 그
러니 즉시 명령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이 나라도 망하고 말 것입니다."



유왕은 이것을 다 읽어보기도 전에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격분하였다. 그는 신
속하게 명령을 다시 내려 신나라 제후의 작위를 박탈한 다음 그를 토벌할 준비
를 하였다.

신나라의 제후는 단독으로 중앙정부의 공격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호경 부근의 만족(蠻族) 견융부락(犬戎部落)의 추장과 동맹을 맺었다. 신나라
의 제후는 견융의 추장에게 자기의 외손자가 왕위를 찬탈하기만 한다면 호경의
모든 금은보화와 많은 남녀를 노예로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이에 견융의
추장은 즉시 1만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호경을 공격하였으며, 신나라의 군대
도 그와 동시에 호경으로 향했다.



신나라와 견융부락이 연합하여 공격해왔지만 유왕은 거기에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조그만 제후국과 오랑캐 부락이 아무리 연합하여도 결코 그들이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주나라의 적수는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견융부락
의 군대가 호경성 아래에 다달았을 때 유왕은 봉화를 올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삽시간에 봉화의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밤새워
달려와야 할 제후국들의 구원병은 끝내 오지 않았다. 봉화의 불길을 본 제후들
은 지난번에 유왕과 포사에게 속았던 경험이 있었던지라 이번에도 그들의 노리
개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왕은 유명한 이솝우화의 목동과 같
은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제서야 유왕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호경에 미리 숨어있
던 신나라의 군사들이 성문을 열어 젖히자 견융부락의 군사들은 손쉽게 호경에
진입할 수 있었다. 크게 당황한 유왕은 포사를 데리고 근위병의 호위를 받으며
여산으로 탈출하였지만, 뒤따라온 견융의 군사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견
융족에게 붙잡여 목이 달아났다. 그러나 견융의 추장은 포사를 보고는 그 미모
에 반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그 이후 그녀의 행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만족(蠻
族)의 수중으로 잡혀간 최초의 중국 황후로 기록될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행적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
면 신나라의 제후가 견융부락의 황음무도한 행위에 분개하여 진(晋), 위(衛),
진(秦), 정(鄭)나라와 연합하여 견융을 물리치고 포사를 데려가지 못하게 했
다. 그렇지만 포사는 신나라의 제후가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는 것이다. 이때가 기원전 771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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