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인터넷역학 - 역학토론
한계는 있으나..
02.07.25 02:32 | 988 hit

수학이 물리학의 기초라 합니다. 그렇다고 수학을 모두 안다 하여 물리학을 모두 아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은 수학대로 쓰임새가 있고 물리는 물리대로 쓰임새가 있으며 영어는 영어대로 쓰임새가 있듯이 명리학도 그 쓰임새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명리학의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왕 시작한 명리학의 공부를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한계를 알고 시작한다면 명리학에 대한 회의는 없을 것입니다.
그 한계와 쓰임새는 다음과 같습니다.
명리학을 비유하자면 이정표와 같습니다.
이정표란 곧바른 길이나 한 길로 된 곳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다만 어디가 얼마만큼의 거리이다 정도를 가늠할 뿐입니다. 그러나 갈림길에서 이정표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못하고를 결정짓는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로에 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때 바로 명리학이 필요합니다. 요긴하게 사용하면 매우 요긴한 존재가 되나 장난삼아 본다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본다면 이는 별 쓸모가 없는 하찮은 학문이 되고 맙니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정해 주듯이 명리학은 인생의 지침서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양육할 적에 그의 성정을 알 수 있다면 그의 적성에 맞게 키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잘 자라는 아이에게 굳이 사주를 보아 키운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입니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참조하는 것입니다. 병이 났거나 애가 성정이 사납거나 도벽이 있거나 등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명리학을 사용하면 매우 요긴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서도 방황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아프거나 집안 식구가 속을 썩이거나 등 문제가 있을 때 참고하는 지침서로서라면 명리학은 어느 심리학책이나 종교 못지 않은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에 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그 책을 도통하기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닙니다. 굳이 도통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인생을 상담할 수 있다면 직업으로서 무난하리라 여깁니다. 통역을 한다고 하여 도통해서 통역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라 해도 쉽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못 넘을 산도 아닙니다.
저는 명리학과 하락리수만을 알고 있으니 그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명리학은 대개 세 종류가 그 주류를 형성합니다. 하나는 연해자평이고 또 하나는 적천수이며 또 다른 하나는 궁통보감입니다. 논쟁의 소용돌이는 서로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데에서 생긴다고 사료됩니다. 연해자평, 명리정종, 삼명통회, 자평진전이 한 갈래인데 이는 격국론이라 합니다. 적천수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용희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통보감은 조후론입니다. 그렇다고 각자의 주장만을 따른다면 이는 명리학의 발전에 거대한 장애가 될 것입니다. 각 학문들을 조화롭게 종합하는 것이 그 명리학의 묘법을 터득할 수 있는 길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직업상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노력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명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니 그들에게 맡기고 업 삼아 공부할 사람들은 옥석을 잘 가려서 열심히 공부하여 현실에 적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끝이 없습니다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정해진 부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회의에 빠져서 낙담하실 필요성은 없다고 사료됩니다.
비록 명리학이 한계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배울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명리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명리학의 근거를 말씀 드리면 명리학은 고대 천문학의 유산입니다. 간지를 음양오행으로 풀고 그 푼 결과를 십신에 비유하여 인생을 설명하는 것이 명리학입니다. 모두 해와 달과 별과 사계절 등을 관찰하여 정밀하게 만들어진 학문이기에 예단이 맞는 것입니다. 다만 틀리는 경우(극히 일부분)는 명리학이 일년을 360으로 정해 놓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음력은 355일이고 양력은 365일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차이에서 그 틀리는 부분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절기를 사용한다거나 열두달이 모두 이십팔수에 의해 지장간이 정해졌다는 사실은 명리학이 결코 우연이나 적당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발길을 걷다가 밤새 헤맸다손 치더라도 날이 밝으면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개명천지이니 그런 큰 방황은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굳이 이렇듯 나서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는 이유는 혹여 누군가 이 글을 읽고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 넘게 거들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역촌 이천교 삼가 씀

인터넷역학 | PC버전 |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