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친일 행각을 벌였다 지탄을 받는 兪鎭午(유진오) 박사의 명조다
甲 丁 癸 丙
辰 巳 巳 午
함자를 풀어보면 兪[유]자 사람은 하나인데 달은 둘이다 ,또는 들었는데 팔자
에 하나의 달에 빛은 둘이다 , 아마 여기서는 甲辰(갑진)의 辰(진)이 그 푸른
정기의 달이 되는데[* 여기선 그 戊字(무자)形(형) 戌(술)을 도충해 오는 달 역
할을 한다는 것이리라] 그 빛을 내게 하는 햇살 巳(사)는 둘이다는 것인데 이것
은 곧 마누라가 둘이라는 의미가 된다 필자가 선입견에서 그래 생각 하였더니
만 분명 부인이 둘이었다
辰巳巳午(진사사오) 가 역시 太陰(태음)이 늘어나는 모습으로 달을 의미하는
데 , 하지만 午(오)는 眞(진)太陽(태양)이라 그 四寸(사촌) 巳(사)는 햇살로서
달을 비추어 달을 빛나게 한다 할 것이라 이러한 두 햇살이 달을 비춤에 달빛
화 하여 갑에 정기 예기 丁(정)이 癸字(계자)의 도충을 맞아서는 매우 크고 화
려하게 빛난다 할 것이다 癸(계)가 丙字(병자)를 겸하여 갖고 있음에 그 투충
의 역할을 한다할 것이라 그래선 그 癸字(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서 丁字
(정자)가 매우 커진다는 것이리라, 丙午(병오)는 순수한 태양이다 巳巳(사사)
는 그 근사치 사이비라는 것이다 이러므로 모방이나 흉내를 잘 낼것이며 그 곱
지 못한 관찰의 대상이 된다 할 것이다
鎭字(진자)는 巳中(사중)庚(경)金(금)이 거짓과 참이라는 뜻이고 그러니깐 재성
이 둘이라는그러한 말이고 午字(오자)는 그냥 年支(년지) 午(오)를 가리킨다 해
도 되고 사람이 十(십)을 올라탄 모습도 된다
玄(현)民(민)이라는 號(호)는 역시 검은머리 백성이라는 겸허한 뜻의 號(호)인
데 역시 癸字(계자)와 巳字(사자)의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래도 매우 좋은 조인데 대정역수 艮爲山卦(간위산괘) 오효는 그 논리적인 말
을 잘하여서 그 말덕으로 관직에 나간다는 그러한 좋은 형태를 그려준다
그의 약력은 고대총장 신민당 당수를 지내는 등 매우 화려하다
아래와 같다
* 유진오 [兪鎭午, 1906.5.13~1987.8.30]
요약
한국의 법학자 ·문인 ·정치가.
호 현민(玄民)
활동분야 정치, 법학, 문학
출생지 서울
주요수상 학술원 공로상, 문화훈장
주요저서 《헌법해의(憲法解義)》,《창랑정기(滄浪亭記)》
호 현민(玄民). 서울 출생. 1929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
학 예과 강사를 거쳐 보성(普成)전문학교 법학교수가 되었다. 1927년경부터 소
설을 쓰기 시작, 《조선지광(朝鮮之光)》 《현대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
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프롤레타리아문학 전성기 동반작가(同伴作家)로 《갑수
의 연애》 《빌딩과 여명(黎明)》 등의 작품을 썼고, 1938년 장편 《화상보(華
想譜)》를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위한 제헌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하면서 1951년 한일회담 대표
로도 활약하였다. 1952년 학계로 돌아가 고려대학 대학원장을 거쳐 총장에 취임
하였는데, 1953년 국제법학회 회장에 피선,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5·16군사정변 후에는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 ·유엔 한국협회장이 되었으며,
1964년 대한교육연합회장 등을 역임하고, 1965년 법전편찬위원에 선출되었다.
1967년 정계로 들어가 신민당(新民黨) 총재가 되어 그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
선, 1970년 신민당 고문에 취임하였다. 1974년 고려중앙학원 이사에 취임하고,
1980년 통일원 고문 ·국정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학술원 공로상 및 문화훈장
을 받았다.
저서에 《헌법해의(憲法解義)》 《헌법강의(憲法講義)》 《민주정치의 길》
《젊은 세대에 부치는 서(書)》 등이 있고, 문학작품에 《유진오(兪鎭午) 단편
집》 《김강사(金講師)와 T교수》 《창랑정기(滄浪亭記)》, 수상집에는 《구름
위의 만상(漫想)》 《젊은 날의 자화상(自畵像)》 《양호기(養虎記)》 등이 있
다.
* 다음은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명조 이다
丁 丁 壬 戊
未 丑 戌 辰
四庫黃川(사고황천)에 根(근)을 박고 丁字(정자)꽃을 피웠으니 한마디로 말해
서 尸山血海 [시산혈해]의 꽃을 활짝 피웠다는 것이다
辰戌丑未(진술축미)는 中央(중앙)이란 의미가 있다 所謂(소위) 한족 中華(중화)
人(인)으로서 中元(중원)을 차지하고 妬合(투합)을 받는 丁字(정자)花(화)를
피워보였다는 것인데 이것이 모두 남의 목을 잘라서 이룩한 모습이라 그 좋은
형태는 못된다할 것이다 戊辰(무진)戌(술)이 庫門(고문)을 도충 시켜선 戊癸合
火(무계합화) 하여선 그 丁字花(정자화)를 보조하고 丑未(축미)가 역시 두둘겨
부셔선 丁字花(정자화)를 보조시키니 한마디로 말해서 그 죽음의 시체를 꽃을
삼았다 할 것이다
朱元璋(주원장)이라는 함자가 그대로 사주명조와 어울리니 그 붉게 음뜸코 임금
의 문장이란 의미이다 아들 낳을 경사璋(장) 반쪽 서옥璋(장) 이래 옥편에 있는
데 명나라 라는 자식을 생하기 위하여서 피를 뿌려 꽃을 피웠다는 것이리라
대정 괘상은 1681 로서 수지비괘 數(수)형에서온 風地觀卦(풍지관괘) 初爻(초
효)動(동) 으로서
童觀(동관)이라 소이 天子(천자)라는 의미이다
하늘이 볼 적에 하고 노는 장난 놀이가 자기 어린 아들 철부지 관점으로 보인다
는 것이리라
觀卦(관괘)는 飛神(비신)을 본다면 卯巳未(묘사미)가 거듭이라 아주 꽃이 잘
핀 모습이다 卦象(괘상) 行(행)列(열)이 그 馬(마) 두필이 足跡(족적)을 남기
고 달아나는 모습이다
이래서 성현이 말씀이 말을 봄동산 화원에 달리니 봄바람이 옷소매에 가득하
다 그 수많은 꽃들을 짓밟고 달아나는 모습인 것이라 이래 그 말을 하는 것이
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원진이 먹이를 문격이라 갖은 방책 병법중에 走爲上計
(주위상계)로다 함인 것이다 소이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는 것인데 도망가
는 것도 그냥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도망가는 것이 大敵(대적)을 잡는 미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손빈의 재주로서 마릉에서 방연이를 잡다, 하
는 것이다 , 손빈 병법을 읽어 보면 알 것이다
손빈과 방연이 모두 귀곡문에 나온 귀곡자의 제자들이라 귀곡자가 볼적에는 아
이들 장난 놀이 하는 것 같은지라 그래 고마 세상 망가트리 겠는 지라 , 나중
엔 고만 손빈을 불러 들이는데 " 이노옴 고만 장난하고 들어오너라" 하심에 손
빈이 스승 한테로 돌아갔다
이처럼 興(흥)宗(종)이 천자의 아들로 태어나선 횡횡천하 하여선 그 대적을 무
너트리곤 천하를 얻는 형태를 그려준다 할 것이다
주원장 [朱元璋, 1328.10.21~1398.6.24]
要略(요약)
중국 명(明)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1368∼1398).
별칭 묘호 태조, 초명 흥종
국적 중국 명
활동분야 정치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초명(初名) 흥종(興宗). 재위연호(在位年號)에 의해
홍무제(洪武帝)라고도 한다. 호주(濠州:安徽省 鳳陽縣)의 빈농 출신으로, 17세
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托鉢僧)으로 지내다가 홍건적(紅巾賊)의 부장 곽자흥(郭
子興)의 부하가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어 원(元)나라 강남(江南)의 거점인 난징
[南京]을 점령하였다. 그뒤 각지의 군웅들을 모두 굴복시켜 명나라를 세우고 연
호를 홍무(洪武)라 하였다. 동시에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중국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한민족(漢民族)의 왕조를 회복시킴과 아울러 중앙집
권적 독재체제의 확립을 꾀하였다. 중앙에는 1380년 중서성(中書省)을 폐지하
여 육부(六部)를 독립시키고 도찰원(都察院)·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를 설치하
여 이들 기관을 황제 직속하에 두었다.
지방에도 포정사사(布政使司:行政)·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軍事)·안찰사사(按
察使司:檢察)를 병립(?立)시키고 이들을 중앙에 직결시켜 황제는 이 통치기구
위에 군림하여 절대권력을 장악하였다. 또, 24인의 황자(皇子)를 전국의 요지
에 분봉(分封)하여 제실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한편, 농민통치에도 힘을 기울
여 전국의 농촌에 이갑제(里甲制)를 설치하고 부역황책(賦役黃冊)과 어린도책
(魚鱗圖冊)을 만들도록 하여 조세·부역의 징수를 공평히 하고 정책의 침투를
꾀하였다. 그러나 그가 꾀했던 군주독재권의 강화는 공포정치에 의해 실현되었
기 때문에 만년에 고독하게 살다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