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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사도세자, 정조 사주
글쓴이 : 芝枰 날짜 : 2021-03-09 (화) 00:11 조회 : 3561
양 력: 1694년 10월 31일 20:00  영조
음/평: 1694년  9월 13일 20:00  남자

시 일 월 년

壬 戊 甲 甲
戌 寅 戌 戌

양 력: 1735년  2월 13일  사도세자
음/평: 1735년  1월 21일  남자

일 월 년

壬 戊 乙
辰 寅 卯

양 력: 1752년 10월 28일 02:00  정조
음/평: 1752년  9월 22일 02:00  남자

시 일 월 년

乙 己 庚 壬
丑 卯 戌 申

영조가 왜 아들(사도세자)을 그렇게 핍박했는지 사주에 드러나 있다. 영조는 무인 일주다. 사주 안에 칠살이 네 개나 된다. 칠살은 아들이다. 아무리 남아 선호 사상 시대의 조선이라 하더라도 기신 역할을 하는 칠살을 곱게 볼 수는 없다. 사주의 구조가 이러하니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영조의 성격 또한 굉장히 예민하다. 그 만큼 불평불만도 많았다. 그 분풀이의 대상이 아들을 향한 것이다.

사도세자의 사망은 그의 아들인 정조의 사주로도 설명이 된다. 정조는 기묘 일주이고 재성이 약하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년월일은 임오년 정미일 계미일이었다. 지지로 인비가 왕하니 부성인 재성이 버틸 재간이 없다.

사도세자는 임진 일주였고 월간에 무 칠살이 있다. 년주와 월지에는 식상이 왕하였다. 성향이 영조와 비슷한 면도 있지만 완전히 딴판인 면도 강하였다. 만약 사도세자가 살아남았더라면 사도세자 핍박에 가세한 족속들은 잔인하게 주살됐을 수도 있다.

왕의 사주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주가 어느 집안에 태어나는 지는 사주 시스템으로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사주 시스템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에서나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상위 개념의 시스템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사주를 장기판 위의 장기말에 비유한다면 그 상위 시스템은 장기를 두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장기를 두는 사람이 어느 말을 어느 위치에 놓을 지는 장기말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조와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왕의 사주와 같다며 좋아해선 안 된다. 부친과의 연이 짧기 때문이다.


芝枰 2021-03-12 (금) 02:34
오행 작용의 결과는 한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용은 상호적으로 하지만 그 결과는 어느 방향으로 나타날지 오행의 관계만으로는 알 수 없다. 처해진 현실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영조의 사주를 보면 칠살이 세개나 된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오히려 자식한테 해를 당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현실 속에서의 물리적 환경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조는 아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었다. 여기서 힘이란 물리적인 체력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왕으로서의 권력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영조 사주에서 칠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기신의 역할이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싫은 감정, 아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그리고 영조 자신의 불만에 인한 아들과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면 그 사람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칠살의 과다는 그런 감정적 반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버지이고, 왕으로서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 사도세자는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물리적 항거 능력을 상실했다. 대립이 낳은 결과는 아들을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만약 영조 사주에서는 칠살이 심하지 않고 특정 운에서 심하게 왔다면 영조의 히스테리는 어른이 된 사도세자를 자극하여 오히여 영조가 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육신 간의 대립의 결과가 어느 쪽의 피해로 나타날 것인지는 반드시 현실적 상황을 따져보아야 한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사주 해석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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