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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유행
날짜 : 2003-04-13 (일) 00:47 조회 : 1915


출처: "꿈과 잠재의식" 한건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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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8년전(1963 년경) 우리 고향 들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
느날 한밤중에 김군과 이군 두사람이 술이 지나치게 취한 채 8km 떨어진
집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집까지는 각각 1.5 km, 1 km정도가 남은 들
판길을 가고 있을때 김군이 갑자기 이군을 잡아 끌며 "여보게, 술 한잔
더하고 가세. 저기 기와집에서 예쁜색씨가 손짓하며 부르지 않나. 자,
어서와." 하면서 천방지축 길 없는 논들을 허둥지둥 달려간다. "이 사람
이 갑자기 미쳤나?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그래." 하면서 뒤쫓아 갔으나
그는 이미 사금을 파낸 웅덩이에 빠져 도저히 건질 수 없었고 결국 그곳
에서 죽어 버렸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지난해에 이군이 사는 동리의 한처녀가 투신자살한
곳 이었다. 사람들은 그 처녀귀신이 그를 잡아갔다고 단정했다. 그가
자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죽은 그녀와 사랑을 속삭일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세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죽은
사람이 있었던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또 죽어가는 일, 이런 현상을 심령
학에서는 악령이 유인해 갔다고 말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생긴 공포감에서 경험적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되고
어떤 환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것이 각성되지 않은채 몽중유행을 했을
것이다. 환상을 진실인 줄 믿게 되는 착각이 그를 죽음으로 유인했다고
보아야한다. 그럴만한 이유로는 그들이 읍내에서 거기까지 오는 동안 술
기운이 왠만큼 깼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알콜 건섬증에 걸려 있었
는지 모른다. 하여간 인적은 고요하고 멀리서 개짖느 소리나 닭우는 소
리만이 들려왔을 때 그는 갑자기 지난해에 처녀가 죽은 웅덩이가 생각나
고 그 여자의 죽은 말령이 나오지 않을까 겁이 났을 것이다.

오싹하고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순간 그는 경험적 최면에 빠졌다. 그리
고 환각을 보게 되었다. 웅덩이의 내력과 연관된 환상, 그것은 상징적
이미지가 되어 웅덩이에 쌓아 올린 흙더미는 '기와집' 으로 봉이고 어떤
물체의 그림자는 '술집여자' 로 보였으며 닭이나 개짖는 소리는 '그녀의
목소리'로 착각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연상은 "술집에서 손짓
해 부르는 술집여자" 의 환각몽을 형성했는데, 그가 그러한 환각에서 깨
어나지 못한 채 "그 술집 안으로 들어가는" 몽중유행을 한 끝에 그는 물
에 빠져 죽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 들판길을 잘안다. 이쪽 산밑에서 저쪽 산밑까지 적어도 1km 정
도는 펼쳐있고 동서로는 수 km 는 더되는 벌판이다. 이 길은 어렸을 때
6년간을 걸어서 소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지금도 그곳 지형의 여러가지는
꿈속의 한 장면으로 자주 등장되는 곳이다. 어떤 상황하에 있으면 이런
환각에 빠지기가 용이한가. 내가 과거에 체험했던 일에서 긍정적인 증언
을 해보겠다. 바로 그들이 당했던 들판길에서 산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
는 약 1.5 km 노정에서 경험한 일이다.


내가 6 학년 졸업반에 있을 때 늦가을 밤중 1 시경에 있었던 일이다. 학
교 근처에 있는 담임 선생님댁에서 중학입시 과외공부를 마치고 돌아오
는 길이었다. 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하도 달이 밝아 나보다 두살 위
인 이군과 같이 밝은 달을 등불삼아 고개마루까지 왔다. 양쪽에 숲이 우
거진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갑자기 무더운 바람이 휙~하고 전신에 끼얹
힌다. 그리고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내옆을 바람처럼 지나쳐 갔
다." 뒤돌아 보았을 땐 거기엔 아무도 없지 않은가. 나는 머리가 쭈볏하
며 소름이 끼쳤다. 나는 몇걸음 앞서가는 이군에게 급히 다가가며,

"얘. 너 회색두루마기 입은 사람 봤니?"
"아니!"
"그럼 더운 바람 불지 않았니?"
"응, 그래. 그러고 보니 후끈하는 뜨거운 기운이 있었어."
우리의 대화는 먼저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끊어지고 되도록 주위를 안 보
고 땅만 보고 걸었다.

걸어내려 오는 오른쪽 야산의 잔솔밭은 지난해 기독교 신자 한 사람이
밤중에 혼자 귀가하다가 유령에게 시달림을 받았다는 곳이다. 사연인즉
"그 솔밭 중앙에서 산발한 젊은여자가 울면서 공중을 얕게 떠서 날아와
자기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바람에" 그길로 병이 들어 수개월간 병석에
누웠다가 일어난 경험담이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이러한 잠재지식은 나를 공포감으로 위축시켰다. 새벽 한 시의 달그림자
가 숲속에 도사린 인적 없는 고개마루에서 13살의 소년은 경최면 상태가
순간적이나마 엄습해 왔던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확인한바이지만 "길가
에 핀 윽세꽃이 달빛에 비치고 바람에 나부낀 것이 얼핏 보기에 회색 두
루마기 입은 사람의 환상처럼 바꿔보인 것이다." 그리고 '더운기운' 은
공포감이 생길때 나타나는 결, 그것이었음이 틀림없다. 만약 이때 내가
조금만 깊은 최면과 환각에 빠졌다면 몽중유행과 같은 착각에 빠졌을 것
이며 나의 잠재의식은 유령과 같은 환상을 만들어 내서 시달림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이군은 큰길을 1.5 km ~ 2 km 정도 거 가
야된다. 나는 새로 전개된 들판길을 가로질러 약 800m 정도에 있는 야산
밑의 우리집 까지 가야만 했다. 집 가까이에 있는 100 m 지점에는 참나
무가 우거져 하늘을 가린 숲속길이 있다. 낙엽이 쌓여 발길을 옮길 적마
다 서벅서벅하는 소리가 마치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만 같았다.
무섭다. 마음은 앞질러 가는데 발길은 천근 무개로 지척거렸다.

숲길 중간쯤 왔을 때다. "갑자기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
런데, 그 소리는 집있는 쪽에서가 아니라 오른쪽 산등성이에서 나는 것
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떡갈나무들이 자란 나무사이를 통해 뒤쪽을 쳐
다보았다. "거기에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하나 웅크
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를 지켜보는듯 움직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분명히 아니다. 머리 끝이 쭈볏해졌다. 발이 땅에 붙었다. 틀
림없는 유령이다. 몸이 사시나무 같이 떨린다.

그래도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바닥에 뒹구는 작은돌을 양손에 하나
씩 잡았다. 그리고 다시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검은 바위 위에
배경으로 나타나 보이는 산너머 저 멀리 떠있는 흰구름짱이 겹쳐보여 흰
저고리 검은 치마의 여인으로 착각되었던 것이다. 나는 환각하지않고 정
신을 가다듬은 것이며 지금까지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듯 하였지만 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집까지 당도했던 것이다. 이때 우
리집 대문은 굳게 잠기고 모든 것이 적막속에 잠겨 있었다. 돌로 문짝을
두드리며 어머니를 부르니까 잠시후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온다. 이때의 체험이 후일에 어
떤 꿈의 재료로 재현되는 일은 없는가 경험해 보기를 원했어도 나는 그
일이 재연되거나 유사한 현상을 꿈 속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이군을 만났을 때 그는 "너 왜 집에 가다가 울었니?"
하고 물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이군은 1 km 가까이 떨어진 큰길을 걷
다가 어떤것의 울음소리를 듣기는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짖는 소리나 닭우는 소리였을 것이며 그것을 위축된 마음에서 사람이
우는 소리 그것도 내가 우는 줄 알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부
른 소리" 가 나에게는 어머니가 부른 소리로 또 착각되었던 것이다.

이날밤은 정말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경험한셈이다. 우스운 일은 이군
이 걸어가는데 "새하얀 털 강아지 한마리가 앞에 설렁설렁 따라와서 집
에까지 왔으나 갑자기 없어졌다" 는 것이다. 자기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그것은 달걀도깨비라고 일러주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착각에
기인했을 것이다. 달빛에 반사되는 길 주변의 물체들 그것이 곳곳에 나
타나 보였지만 하나가 계속된 줄로 믿은 착각이 위축된 마음에 털강아지
란 환상을 만들어 내고 계속 그러 상태에서 집까지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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