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한국사에서 하루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 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하루의 시작을 해가 뜨는 시점으로 정했다 한다.
외국 천문학사에서도 한밤중에 별관측을 하다 날이 바뀌는 불편함 때문에 한낮에 날이 바뀌는 기준을 삼은 적도 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생활이나 기록의 편의에 의한 것이다. 여름이 되면 서머타임을 실시해 하루를 일찍 시작해서 효율을 높이는 것과 같다. 이런 임의적인 변화는 실 보다는 득이 많다.
하지만 사주학에서 이런 인위적인 변화가 가능할까? 편의에 의해 하루의 시작을 해가 뜨는 시점으로 잡거나 한낮으로 정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사주학(넓게는 역학 易學)에서는 년월일시를 육십갑자로 표현한다. 이것은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좌표계인데, 고정불변의 좌표계다. 수학적인 좌표계는 얼마든지 변환이 가능하지만, 육십갑자 좌표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고정된 표상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은 양력의 경우 그레고리오력인데 2월의 경우 특정한 해에 윤일을 끼워넣어 달의 길이가 29일이 되기도 한다. 태양의 1년의 길이를 맞추기 위함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날짜 보완은 일상생활에 있어 큰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역법(曆法)의 관점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것은 음력의 윤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육십갑자에도 저러한 윤일 개념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2월 29일에 전날의 일진을 그대로 반복해서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육십갑자 체계 자체가 엉망이 될 것이다. 간단하게 사주를 산출하고 풀이를 해보면 안다. 전혀 사주해석이 맞지 않을 것이다. 육십갑자는 그 자체로 표상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학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즉, 단순한 60진법이 아니란 뜻이다. 오늘이 갑자(甲子) 일이면 오늘 그 자체가 갑자로써의 의미를 지닌다.
육십갑자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원리에나 근거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 고대갑골문에도 등장하는 육십갑자의 쓰임은 굉장히 오래 되었으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잘만 쓰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하루의 기준에 야자시(23시-0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육십갑자의 흐름 자체를 망가뜨리는 주장이다. 야자시 주장자들의 구체적인 데이타(임상 사주) 조차 본 적이 없다. 야자시 주장자들의 주요근거는 그렇게 풀이하면 잘 맞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임상 사주를 가지고 공론화하여 토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잘 맞으면 드러내놓고 갑론을박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이 글의 요지는 사주학에서는 시간기준은 인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생활의 편리나 기록의 편리를 이유로 임의로 시간기준을 정하여 사주를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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