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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ㆍ음양오행ㆍ명리학이 대체 인문학이냐고요
글쓴이 : 芝枰 날짜 : 2017-01-27 (금) 01:59 조회 : 2093
링크 참조 하기 바람.

한마디로 책광고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역술 관련 인구들한테 책 팔아먹기 좋은 주제 아닌가. 내용은 안봐도 뻔하고 누가 전문을 보내주면 읽어볼까. 돈 주고 사기에는 쓰레기에 불과해 보인다.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사주명리를 10년 공부했단다. 그냥 콧방귀가 나올 뿐이다. 저런 자한테는 회초리가 필요하다. 어떻게 저렇게 주제넘는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 평생을 명학(命學)에 인생을 받쳐온 대가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소리인데 저런 경솔한자들이 나대는 건 단 하나의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냥 모자른거다.

다른 한 사람은 천문연구원 연구원이다. 내용은 안읽어봤지만 안봐도 알조고, 역시 뻘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역법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주장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설령 그런 주장을 했다 할지라도 터무니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사주학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음력이나 양력의 숫자는 간지를 뽑기 위한 인덱스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주역으로 확장한다면 음력의 숫자는 중요하다. 이런 자한테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딱 하나다. 아는 것에 대해서만 떠들기 바란다.

자의성(恣意性)
예를 들어, 어떤 괘를 논한다 치자. 그것에 대한 주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해석도 사람의 머리수만큼 다양하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易)이 허용하는 범위이다. 그 다양한 해석들은 겉보기에는 다르지만 하나의 지향점이 있고, 그 범주안에서의 해석이란 것이다. 이는 마치 수학의 토폴로지 보다도 더 유연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64괘의 배열순서는 총 몇가지일까? 64! (팩토리알) 만큼이다. 인간의 지력으로 그 모든 배열의 순서에 대해 역(易)의 의미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아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64괘 배열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가? (당위성)

이런 추리는 가능하다. 64괘가 성립될 무렵의 시대는 현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단순한 사회였다. 직종도 엄청나게 단순했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겪는 경험들은 작금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 당시의 현자들이 파악한 생장과 소멸이 바로 64괘의 성립을 낳은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그냥 주사위 던져 장난치듯 그 순서가 아무렇게나 정해진 것이 아니란 것이다. 만약 64! 중에 하나에 불과한 아무런 무의미한 무작위성으로부터 현재의 64괘의 괘서(괘순서)가 정해진 것이라면, 점이든 그것에 기반한 철학이든 아무것도 의미를 가지는 것이 없었을 것이고 현재까지 전승되어 전해내려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머지 64!-1 가지의 역배열이 모두 의미가 없을 것이란 말은 아니다. 역(易)은 열려 있다. 궁금하면 도전하면 된다.

왜 15번째 괘가 지산겸 괘여야 하는지 주역의 작자는 어떠한 논증이나 증명을 해놓지 않았다. 최초의 주역의 작자가 파악한 그래야만 하는 당위적인 깨달음에 기초한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가장 근본적인 그 탄생의 확실한 배경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그냥 꼬장일 뿐이다.

주역은 음양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고, 세상을 서술하는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쓰는 언어처럼 말이다. 우리가 쓰는 단어의 최초의 근원이 무엇이고 왜 이렇게 저렇게 발음을 해야하고 쓰기는 이렇게 저렇게 써야하는지 정의내릴 수 있는가? 당연히 없다. 그러면 우리가 쓰는 언어는 아무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냥 소리일 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왜 64괘중에 15번째 괘가 지산겸 괘여야 하고 겸손이어야 하는지 아무 근거도 없으니 무시해도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기보다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 노력을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연구와 통찰과 깨달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라면 그저 무관심과 무지 밖에는 남는 것이 없을 뿐이다. 무관심과 무지 밖에 남는 것이 없다면 굳이 그것에 대해 떠들 하등의 이유도 없을 것이다.

선택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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