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성공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연과학이 서술하는 그 대상에 대해 지금까지 그나마 성공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론도 이론이지만 바로 계량화에 있을 것이다. 측정이 가능하고 실험으로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학(易學) 이라는 학문의 주요 대상인 인간의 삶을 어떠한 기준으로 계량화를 할 수 있을까? 마음을 계량할 수 있을까? 성격을 계량할 수 있을까?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적어도 아직까지는) 언어로 서술이 된다. 그런데 사람이 쓰는 언어는 완벽하지 않다. 중의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도 상념과 느낌과 가지고 있는 개념이 다르다. 그래서 역학자(易學者)들은 언어적인 표현에 굉장히 조심해야 하고, 하나 하나의 단어를 사용할 때 개념을 분명히 하여 단순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의 모호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수학이 성공한 이유는 바로 인간이 쓰는 언어를 버리고 기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易)을 서술하는데 있어서 언어를 잠시 미루어두고 기호로써 그 관계들을 먼저 정의해 나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기호로써 음양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은 살덩어리를 버리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역(易)이 표현하는 대상을 표상이라고 하는데 그 표상은 만물이다. 역의 기호는 한정되어 있지만 표상이 되는 만물은 무한하다. 그러니 그 관계를 단순화해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의 표현으로 만물을 연역하여 전개할 수 없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경험이 필요하고 세상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만물 안에 역(易)의 의미가 깃들어 있고 그것을 파악하고 정리하여 다시 역(易)이라는 것에 덧씌우는 작업을 하는 것이 역학자들의 일이다. 역(易)은 자기회귀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易)은 본받음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image 또는 reflection 또는 projection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의 역의 기호가 있다치자. 그것은 거울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그 역의 기호를 보고자 들여다 본다면 그 사람의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과 같다. 같은 거울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그 다른 사람의 얼굴이 비추어진다. 역(易)이 자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렇게 보인다 해도 제멋대로 해석한다고 그것이 맞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