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주를 계절의 관점에서 보지않고 어떻게 간명이가능하죠? 수중에 자수라는 글자는 음중의 음이고 12월에 배치된 이유도 계절상 한겨울이기 때문인데 만약 계절적인 해석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자수를 왜 하필12월에 배치했고 각 12지지들이 배치된 이유가 설명이 될까요?
짧은 의문이지만 저 의문에 대한 대답은 짧지 않다.
사주를 구성하는 것은 간지다. 간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핵심이다. 간지는 천간과 지지다. 천간과 지지에는 오행과 음양의 개념이 들어 있다.
우선 간지에 대한 이해에 접근할 때 구분을 해야 할 것이 있다. 간지에 대한 이해를 원류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답이 안 나온다. 우리는 최초의 누가 천간, 지지, 오행, 음양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누가 어떤 이유로 간지에 현재와 같은 오행과 음양을 배속시켰는지 모른다. 현재의 틀이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졌다는 관점에서 간지에 접근해야 한다. 이것을 과학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왜 갑은 목이면서 양인가부터 증명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은 당장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단지 그것을 그렇게 정의한다 라고 치부하기로 한다.
정의
천간지지 : 오행 + 음양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정의를 하고 보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고서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 오는 모든 내용을 마치 기정사실인양 받아들이면 상당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점들을 솎아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정의의 경계가 필요하다. 의외로 정의는 간다하다. 정의는 바로 저기까지다.
정의에서 분리되는 것이 바로 물상이다. 원글(링크)에서 지적한 것이 바로 물상의 문제점이다. 간지에 대한 물상을 사실인양 받아들인다면 저러한 문제들이 생긴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하나의 사주에는 모든 계절이 들어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사주의 간지만 보고서는 계절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보일 것이다.
먼저 대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사주는 간지로 표현한다. 사주학에서 간지는 시간에 대한 대명사다. 시간을 표현할 때 간지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지구는 한 방향으로만 자전하고, 한 방향으로만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그 흐름에 육십갑자의 주기를 배속하여 놓고 특정 시점의 년월일시에 대한 간지를 사주라는 틀로 보는 것이다. 남반구나 북반구나 이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구상 어디에 위치하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동일한 경도선상에서 여러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자. 그들의 사주는 어떨까? 위도 60도, 위도 30도, 위도 0도, 위도 -20도, 위도 -50도 등등 어디에서 태어나더라도 동일한 경도선상이라면 사주는 동일하다. 이 말인즉, 하나의 사주에 모든 계절이 다 들어있다는 의미다. 북반부가 겨울이라 할지라도 적도부근에서는 여전히 덥다. 다시 말하면 사주를 표현하는 간지는 계절을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논리를 깨려면 위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증명하고 위도에 따라 간지를 다르게 매겨서 사용하는 체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체계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잠깐 살펴보자. 위도에 따라 간지를 다르게 매긴다면 몇도 간격으로 매겨야 할까? 정수배, 유리수배, 무리수배 등등 모든 경우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간지를 물상론과 엮어서 생각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된다. 子는 한 겨울이고 얼음이 어는 계절이다. 만약 1년 내내 상온을 유지하는 북반구이면서 적도 부근의 지역이라면 그곳에서는 간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간지는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만 의미가 있는 논법이란 말인가? 일년내내 겨울이 오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주가 없다는 말인가?
사주는 물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물상과는 무관하게 간지의 정의에 기초하여 해석하면 된다. 子가 북반구에서는 겨울이고 남반구에서는 여름이든 상관 없이 자는 인과 묘를 생하는 관계이고, 사와 오를 극하는 관계다. 이것은 정의에 기반한 해석이다. 간지에 배속된 물상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이 관계는 유효하다. 북반구 남반구 할 것 없이 모순이 없다.
즉, 사주해석은 간지의 물상인 계절이 아니라 오행의 관계에 의한 해석만이 진실인 것이다. 사주를 간지의 물상으로 보는 것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비유일 뿐 논리가 될 수 없다.
간지를 물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이유는 논리가 발달하지 않은 옛사람들의 원시적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시대의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여행도 자유롭지 못 했던 시대에 한 곳에서 태어나 한 곳에서만 살다간 지역 토박이식의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고, 지구가 자전하는 천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에 따라 간지에 담겨 있는 시간의 개념도 넓게 확장해서 보아야 한다. 마치 이런 것이다. 직선인 줄 알았는데 넓게 보니 큰 원의 원호였더라는 것이다.
만약 사주가 계절학이라면 사주는 북반구에서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아주 특수한 운명술이 될 수 밖에 없다. 타지역에서는 전혀 맞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사주는 남반구 사람들이나 적도 부근 사람들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 없이 잘 맞는다. 이것만 봐도 사주가 계절학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처음부터 사주를 배울 때 간지와 계절을 연관시켜 배운다. 고서에 기반한 거의 모든 사주서적이 그렇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인정하기 참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모순을 찾고 사고가 깊어지고 논리를 따지고 들고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사주를 해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된다. 그 시점이 빠를 수록 좋다.
간지가 무엇이냐에 대한 더 근본적인 정의가 있지만 그 부분은 생략한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의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