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력: 1694년 10월 31일 20:00 영조
음/평: 1694년 9월 13일 20:00 남자
시 일 월 년
壬 戊 甲 甲
戌 寅 戌 戌
양 력: 1735년 2월 13일 사도세자
음/평: 1735년 1월 21일 남자
일 월 년
壬 戊 乙
辰 寅 卯
양 력: 1752년 10월 28일 02:00 정조
음/평: 1752년 9월 22일 02:00 남자
시 일 월 년
乙 己 庚 壬
丑 卯 戌 申
영조가 왜 아들(사도세자)을 그렇게 핍박했는지 사주에 드러나 있다. 영조는 무인 일주다. 사주 안에 칠살이 네 개나 된다. 칠살은 아들이다. 아무리 남아 선호 사상 시대의 조선이라 하더라도 기신 역할을 하는 칠살을 곱게 볼 수는 없다. 사주의 구조가 이러하니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영조의 성격 또한 굉장히 예민하다. 그 만큼 불평불만도 많았다. 그 분풀이의 대상이 아들을 향한 것이다.
사도세자의 사망은 그의 아들인 정조의 사주로도 설명이 된다. 정조는 기묘 일주이고 재성이 약하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년월일은 임오년 정미일 계미일이었다. 지지로 인비가 왕하니 부성인 재성이 버틸 재간이 없다.
사도세자는 임진 일주였고 월간에 무 칠살이 있다. 년주와 월지에는 식상이 왕하였다. 성향이 영조와 비슷한 면도 있지만 완전히 딴판인 면도 강하였다. 만약 사도세자가 살아남았더라면 사도세자 핍박에 가세한 족속들은 잔인하게 주살됐을 수도 있다.
왕의 사주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주가 어느 집안에 태어나는 지는 사주 시스템으로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사주 시스템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에서나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상위 개념의 시스템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사주를 장기판 위의 장기말에 비유한다면 그 상위 시스템은 장기를 두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장기를 두는 사람이 어느 말을 어느 위치에 놓을 지는 장기말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조와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왕의 사주와 같다며 좋아해선 안 된다. 부친과의 연이 짧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