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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계산] 고조선 일식 기록 검증
글쓴이 : 芝枰 날짜 : 2021-03-05 (금) 12:10 조회 : 1272
BC2183년
무술 58년 단제께서 붕어(崩御)하셨는데 이날 일식(日蝕)이 있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원전 2183년에는 두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4월의 일식은 동북아와 중국 중앙에서는 일식을 볼 수 없었다. 양력(율) 10월의 일식은 오세아니아와 남극에서만 관측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날짜도 특정되지 않은 이 기록은 거짓으로 보인다.

BC1533년
일식(日蝕)이 있었다. [단기고사 전단군조선 제 17세 여을]

기원전 1533년에는 두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5월의 일식은 남미에서 시작하여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끝났다. 동북아와 중국에서는 일식을 볼 수 없었다. 양력(율) 10월의 일식은 오세아니아에서 시작한 일식이 남태평양을 가로지렀기 때문에 역시 동북아와 중국에서는 일식을 볼 수 없었다. 이 기록 역시 거짓으로 보인다.

BC837년
갑자 13년 3월 일식(日蝕)이 있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원전 837년에는 두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6월의 일식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남극 대륙을 스쳐 지나가는 부분일식이었고 북반구에서는 관측할 수 없었다. 양력(율) 11월의 일식은 남극을 스쳐가는 부분일식이었고 북반구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기록 역시 거짓으로 보인다.

BC765 년 4월
8년 4월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단기고사 후단군조선 제 11세 사벌]

기원전 765년에는 세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2월의 일식은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몽골지역에서 끝이 났다. 양력(율) 8월과 12월의 일식은 모두 남반구를 지나가는 부분일식이었고 북반구에서는 관찰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일식이 시기상 비슷해 보이지만 3달 정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이 기록 또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BC524년 8월
두홀 21년 8월에 일식이 있었다. [단기고사 후 단군조선 제 15세 두홀]

기원전 524년에는 두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2월의 일식은 남미에서 시작하여 남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 전역을 지나 유럽과 현재의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부 지역까지 일식이 진행됐다. 양력(율) 8월의 일식은 북미 캘리포이나 연안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에서 마무리됐다. 이 기록 역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BC423년 2월
구물 3년 2월에 일식이 있었다. [단기고사 후 단군조선 제 20세 구물]

기원전 423년에는 두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3월의 일식은 아프리카 서부 연안에서 시작하여 인도양을 거쳐 중국 대륙과 한반도까지 일식이 진행됐다. 이 당시는 음력 2월이었다. 양력(율) 9월의 일식은 남미에서 시작하여 남대서양을 거쳐 아프리카를 지나 마다가스카르 동부 연안에서 마무리됐다. 이때는 동북아나 중국에서는 일식을 관찰할 수 없었다. 2월의 일식 기록은 과거 천문계산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BC248년 양 7월 22일(음 10월 1일)
계축 48년 10월 초하루(朔/丁巳)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원전 248년에는 두 번의 일식이 있었다. 양력(율) 4월의 일식은 중국과 한반도 시베리아 중동부, 베링해, 알라스카, 캐나다 서부와 중부까지 일식이 진행됐다. 양력(율) 10월의 일식은 남반구를 지나갔기 때문에 북반구에서는 관찰할 수 없었다. 이 해에는 첫 번째 일식을 한반도에 중국에서 관찰이 가능했으나 기록에 나온 시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한국천문연구원의 천문기록관에는 양력이 음력보다 3달이나 앞선다. 음양력 환산 오류인지 문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기록들과는 다르게 일진이 적혀있다. 그래서 丁巳 일이 언제였는지 찾아봤다.

기원전 248년 丁巳일의 날짜, 양력(율)
양 1월 23일, 음 12월 29일
양 3월 24일, 음 1월 29일
양 5월 23일, 음 4월 1일
양 7월 22일, 음 6월 2일
양 9월 20일, 음 8월 3일
양 11월 19일, 음 10월 4일

모두 정사일이지만 이때는 일식이 모두 없었다. 첫 번째 일식은 양 4월 24일이었고 음력으로 3월 1일이었으며 일진은 무자였다. 따라서 저 기록 또한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결론
고조선의 일식기록은 천문계산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芝枰 2021-03-08 (월) 00:28
고대 일식 기록에 대한 시간적 오차를 너그럽게 허용하면서 저 정도면 정확한 수준이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오차의 허용 범위다.

현대의 일식계산 이론은 정밀도가 높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지구 자전은 불규칙하다.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한 시간과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한 시간 간에는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것을 델타티라고 한다. 고대 사람들은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시간을 인식했다. 현대의 원자시계와 그 당시 사람들의 시간 개념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델타티로 보정을 해주지 않으면 고대 사람들이 경험한 시간을 알 수가 없다.

고대로 갈 수록 천체 관측 기록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천체 관측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정밀도는 낮다. 고대의 델타티를 정확하게 산정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델타티를 정확하게 몰라도 원자시를 기준으로 언제 지구에 일식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알 수는 있지만, 일식이 시작되고 끝난 정밀한 경위도 산출이 어렵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대의 일식기록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정이 불가하게 된다. 델타티 값에 따라 일식 지역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과거의 델타티 값을 보면 기원전 2천년까지 가더라도 12시간 정도의 차이는 나지만 몇 달씩까지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만약 이 값들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계산한 일식이 일어난 경위도는 그래도 신뢰할 만한 것이다.

많이 양보해서 현대적 계산에서 한 달 정도 안에 고대의 일식 기록이 있다면 봐줄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달 이상이나 1년 이상 차이 나는 일식 기록은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신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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