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는 대운이 시작하기 전에 소운을 적용하였습니다. 소한(小限)법
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 논리가 상당히 잘못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실제 응용에 있어서도 잘 맞지 않아 쓰는 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논리
의 문제점은 비고전의 소운법에 이미 지적해 놨습니다. 간단히 다시
언급을 해봅니다.
고전 소운법의 잘못된 점.
1. 남자는 병인, 여자는 임신부터 소운이 시작
이는 음양관에 뿌리를 둔 논리입니다. 남자는 양이니 양의 극치를 이
루는 불에 뿌리를 둔다는 개념이고, 여자는 음이니 음의 극치인 수에
부리를 둔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부자연스럽고 지나치게 임의적인
논법이라 실제와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오행상으로 임신은 양에 속하
니 그 또한 음양논법에 위배가 됩니다. 즉, 갑자의 오행은 무시하고
음양에 배속시킨 오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요. 비대칭적 논리입니다.
2. 시주와 년주와의 관련성
시주로 부터 소운이 시작된다는 발상은 1 번의 내용에 비해 논리적인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조건이 년두에 의한다는데 문제
가 있습니다. 실제 유관한 관계에 있는것은 년주와 월주, 일주와 시주
입니다. 년주월주 관계는 일주시주 관계와 동일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논리력을 발휘했다면 충분히 일주로 부터 시주의 소운을 이끌어 내
는데 성공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고방식
자체가 사대주의였고, 세세한 것을 무시하는 악습으로 인해 충분히 다
듬어진 논리를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고전 논리 자체가 격(格)에 기
반을 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해하리라 봅니다. 격은 커다란 줄거리를
다루고 세밀한 것은 대체로 무시는 논법입니다.
3. 소운의 시작점
지금까지 사주학이 창시된 이래 대운이 왜 사주학에서 존재해야 하느
냐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사주를 해석
하면 사주 하나만 달랑 풀이한 것이 비해 적중률이 높다는 것이 대운
에 대한 신빙성을 줄 뿐입니다. 물론 대운 만의 해석이 다 맞지는 않
지요. 그런 대운이 또한 왜 1세부터 시작을 하지 않느냐를 아는 사람
도 아무도 없습니다. 대운이 후세에 시작하는 것은 시행착오에 의한
결과물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왜 소운은 1세부터 시작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도 대운에 적용
된 논리가 똑 같이 응용이 됩니다. 역시 시행착오가 있었지요. 또 다
른 한편으로는 네 기둥(사주)에 대한 표상으로부터 그 이유를 간접적
으로나마 알 수 있습니다. 년주는 뿌리, 월주는 줄기, 일주는 꽃, 시
주는 열매.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가 됩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뿌리
부터 열매까지를 이릅니다. 대운은 줄기가 계속 뻗어 나가는 것이고,
소운은 열매가 계속 열리는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열리는
곳은 줄기지요. 뿌리가 아닙니다. (물론 뿌리에 열리는 열매도 있지만
그것은 여기서 논외의 대상이니 따질 필요 없습니다. 이는 단지 간접
적 비유일 뿐이니까요.) 따라서 소운은 대운과 시작이 같은 것입니다.
왜 소운이 1세부터 시작하지 않느냐는 의문은 왜 대운이 1세부터 시작
하지 않느냐는 의문과 같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운 이전에 소운을 적용하여 완벽을 꽤하려 했으나 타당성
이 결여되어 제대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만약 대운(소운)이전에 어떤
운이 존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이 있거나, 또는 존재가 실증된
다면 찾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대운이나 소운법과는
별개의 다른 논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본인의 체용론에 의하
면 유한범위의 운은 운의 조건을 위배한다는 논리를 보인 적이 있습니
다. 이에 의하면 대운이전까지만 적용되는 제한된 운이 명확하게 존재
하리라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운의 특성을 알려면 역학적 세계관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비고
전적 체용론에 의해서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일종의 사유와 공유의 개념입니다. 남들과 공통된 세상이 있고, 나만
의 세상이 있지요. 인간 개개인이 작은 소우주라 한 것은 바로 후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여기에 해당하는 운이 바로 대운과 소운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신에서 나옵니다. 세상을 바라보
는 눈도 자신의 눈에 의해서지요. 생각도 자신의 머리로 하고, 냄새로
자신의 코로 맡습니다. 생이라는 것 자체를 논할 때는 자신의 생을 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통된 세상의 삶보다는 나만의 삶의 세상이
더 큰 것으로 인식되지요. 이것이 사주학에서 운의 개념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세운은 항상 1세부터 시작하지요. 누구나
다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공통된 세상이
고, 대운은 후세에서 시작하는데 사람마다 다르지요. 물론 가지 수는
많지 않지만 다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바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신만의 세계(소우주)에 해당합니다. 자신의 세계라는 것이
인간사회에 격리된 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
니니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이런 세계관에 의해 운의 시발점이 다
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너무 거국적인 얘기
라 간단히 몇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내용이 부족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어찌 되었든 그 물음에 답변을 드리자면, 소운과 대운은 시작점이 같
으며 그 이전의 운에 대해서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미 많은 자료들이 그것을 뒷 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써는 대운(소운) 이전에는 세운만을 고려해서 보는 것이 타당합
니다. 이미 1년 단위의 세운이 있는데 따로 1년 단위의 소운법을 쓴다
는 것 자체는 당위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맞지도 않는 고전
식 소운법을 쓰는 것 보다는, 세운법만을 참고로 하십시오.
길은 찾는 자에게 보입니다. 대운 이전에 소운(어떤 형태든)이 존재
한다고 믿는다면 찾도록 노력을 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