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역)의 글 된바가 멀지 않을 것이니 指向(지향)하는 길 자주 이동한 것이 아
닌가 한다 變動(변동)해서 한곳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두루 六虛(육허)流行(유
행)하여선 上下(상하)가 떳떳함이 없으며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바뀌어선 가
히 一定(일정)한 法典(법전)을 찾을 길이 없다 오직 適合(적합)한 것으로 변동
하는 것이니 그 나고 듦을 法度(법도)로서 헤아리고, 겉과 안을 하여금 두려움
을 알게 하며 또 憂患(우환)과 함께 緣故(연고) 原因(원인) 있음을 밝히는지
라 그러므로 易(역)은 스승으로 보존할 것이 없으나 그 指示(지시)하는 것이 부
모님께서 臨(임)하는 것 같음이니 처음엔 그 말씀을 총괄하고 그 法方(법방)을
헤아리게 하건데 이미 법전의 떳떳함이 있거니와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그
길에 허심 탄회하게 행하지 못할 것이 나니라
* 잔주에 하길 方(방)은 方道(방도)인 것이다 처음에 말씀으로 말미암아선 그
事理(사리)를 헤아리게 한다면 그 법전 삼을 만한 떳떳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라 그렇게 해선 神(신)처럼 밝히는 데에서인즉 그 사람이 존재해야만 그렇게 밝
혀 그 길이 행하게 되는 것이다
以上(이상)은 제 八章(팔장)이었다
易(역)의 글 된바를 볼진데 시작할 언덕과 마무리지을 긴요함이 바탕을 하게
되는 지라 六爻(육효)가 서로 잡스러움은 오직 그 時期(시기)의 事物(사물)일
따름이라
* 잔주에 하길 바탕은 卦(괘) 體質(체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卦爻(괘효)가 필
히 그 시작과 마침을 들어 올린 후에 몸을 이루게 된다 爻(효)인즉 오직 그 時
期(시기)와 事物(사물)일 따름이다
그 처음은 알기 어렵고 그 上爻(상효)위치가 되면 알기 쉽나니 本(본)과 末(말)
이 처음에는 模倣(모방) 비교하는 것등을 말씀하는 것이고, 마칠 무렵이면 마
무리짓는 成果(성과)를 말하는 것이라
만일 대저 잡스런 事物(사물)과 덕을 갖춤과 오름과 더불어 그릇됨의 分辨(분
변)은 곧 그 中間(중간)爻氣(효기)가 아니면 갖추지 아니 하였는지라
슬프다- 역시 存亡(존망)과 吉凶(길흉)을 구함일 진데 곧 머무른다면 가히 안
다 하겠거니와 지혜로운자 그 彖辭(단사)를 관찰한다면 맞는 [* 짐작하는] 생
각이 半(반)은 지났다할 것이다
二爻(이효)와 四爻(사효) 功(공)은 같아도 자리는 틀리어선 그 善(선)함이 같
지 아니하니 이효는 좋은 것이 많고, 사효는 두려운 것이 많다 要(요)는 四爻
(사효)가 頂上(정상)爻氣(효기)에 近接(근접)해있기 때문에 그래 두려운 것이
많게되는 것이다
三爻(삼효)와 五爻(오효) 功(공)은 같아도 자리를 틀리어서 三爻(삼효)는 凶
(흉)한 것이 많고 五爻(오효)는 功果(공과)를 두는 것이 많음은 貴賤(귀천)의
等數(등수)가 있기 때문이라 소이 三爻(삼효)는 五爻(오효)보다 못한 자리 귀하
지 못하다는 그런 말씀이다
三爻(삼효)와 五爻(오효) 같은 陽爻(양효)의 자이라도 貴賤(귀천)이 같지 않는
지라 그래선 부드러움으로 머물게 된다면 위태 스럽고 오직 강하다면 잘 감당
해 낸다할 것이다
以上(이상)은 제 九章(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