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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신비경 34
날짜 : 2005-07-04 (월) 10:03 조회 : 1157

* 다음은 박정권 유신에 참여했던 白斗鎭(백두진) 명조 이다

乙 己 壬 戊
亥 未 戌 申

辛亥(신해) 作害(작해) 속에 戌(술)未(미) 三刑(삼형)을 깔았다 乙己鼠 向(을
기서후향)이라고 年支(년지) 貴人(귀인)이 되어 있다
지금 그 銜字(함자)를 본다면 흰 말 金(금)이 진짜라는 뜻인데 숨어 있어선
보이질 않으니 그냥 봐선 알수가 없다는 것이리라 日柱(일주)月柱(월주)相間
(상간)에 庚申(경신)辛酉(신유)를 隔(격)角(각) 拱挾(공협)하고 있음에 이것
이 진짜로 서방 흰색의 말 됫박만한 金氣(금기)로서 진짜로 그 중요한 구심점
을 이뤗다는 의미이다
소이 眞金(진금)이 숨어 있어선 그것이 此(차) 四柱(사주)의 주안점이 된다는
것이라 年支(년지) 貴人(귀인) 申字(신자)에 祿(록)을 얻는 庚字(경자)가 그것
이 官廳(관청)에 세발 갈대를 물고선 坐定(좌정)한 모습이라는 것이니 역시 달
빛에 벗을 삼아선 남쪽으로 내려온 기러기라는 것이리라 辛酉(신유)역시 그 庚
字(경자)가 製鍊(제련)된 모습으로서 그 능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서북 기운이 戌(술)未(미)庫(고)를 중심하고 있음에 그 동남 밝은 방
으로 내려와선 권위를 발하였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달을 밝힐수 있는 남방 운에 득세를 한다할 것이다
乙 己 壬 戊
亥 未 戌 申
乙亥(을해) 북방 새 기둥이 年支(년지)申(신)으로 빠지는 상태를 그린다 할 것
인데 亥字(해자) 天門(천문)위에 놀던 새 몸[일간 己(기)]이 壬字(임자)形
(형) 기러기 나는 형태로 변하여선 소이 돌집 '엄'자의 女人(여인)門中(문중)
戊字(무자)달 속으로 胎(태)가 되어 들어가면 申(신)으로 泄氣(설기) 生(생)한
다는 의미이다 地支(지지)亦是(역시) 亥字(해자)를 未(미)가 먹고 戌(술)과 土
性(토성) 連繫(연계)지어선 申(신)을 생하는 구조인데 소이 申(신)은 官職(관
직)에 오른다는 官廳(관청)의 안에 기러기가 세발 갈대를 물고 좌정한 모습의
庚字(경자)의 祿(록)根(근)이 되는 것이라 이로서 그 高官(고관)이 되어지는 것
을 알수가 있다할 것이다 , 하늘 달과 땅달 戌(술)이 젓가락이 되어선 乙己(을
기) 壬亥未(임해미)를 집어먹고선 申字(신자) 귀인을 생하는 모습이다

* 백두진 [白斗鎭, 1908.10.31~1993.9.5]
요약
정치가.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황해도 신천(信川)
주요저서 《백두진회고록》,《대한민국현대인물사》

본문
황해도 신천(信川) 출생. 1934년 일본 도쿄[東京]대학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조
흥은행에 들어가 8·15광복 후 이사(理事)로 승진하였다. 1949년 외자청장(外資
廳長)·식산은행장(殖産銀行長)을 역임하고 1951년 재무장관에 발탁되었으며 기
획처장을 거쳐 1952년 국무총리 서리, 이듬해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1961년 경기 이천군 지구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67년 공화당 총
재 상담역을 맡았으며 그 후 7·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70년 국무총리
에 발탁되었고 이듬해 국회의장 겸 아시아의원연맹(APU) 한국위원장을 역임한
후 국토통일원 고문에 취임하였다. 1973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그해 유신정우
회 의장에 선출되어 유신체제에 참여하였다. 19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국회의장에 재선되었다. 저서에 《백두진회고록》 《대한민국현대인물사》
등이 있다.



* 다음은 해공(海公) 申翼熙(신익희) 선생님의 사주 이다

乙 甲 辛 甲
亥 寅 未 午

地支(지지)에 寅亥合(인해합) 午未合(오미합)을 깔았다 兩(양)甲(갑) 젓가락
이 그 官性(관성)과 그 貴人(귀인)을 집어선 가져다 논 모습이다 , 官性(관성)
辛(신)이 貴人(귀인)寅(인)午(오)를 모두 갖고 있는 모습이다
丙申(병신)년 四五月(사오월)에 서거 하셨으니 食傷(식상)驛馬(역마) 發動(발
동)하여 官性(관성)破棄(파기) 함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誘說(유세)道中(도중)
열차에서 뇌일혈로 돌아 가셨으니 확실하게 그 식상 역마가 발동 하여선 돌아가
신 모습이라 할 것이다
함자를 풀어본다면 海公(해공) 水氣(수기)를 고무래 머리를 가진 자[午字(오자)
를 말함]로 밀어내는 申(신)이 눕게 하는 팔자 저절로 그래 돌아간다 는 것이다
[公(공)= 八字(팔자)와 自營(자영)한다는 의미 自己(자기)라 하는 의미  字(사
자)이다 ] 소이 申中(신중)에 록을 얻어선 그 돌집 귀한 속에 세발 갈대 물은
기러기 귀한 자리를 확보하는 것[庚(경)을 말함]인데 여기선 그것이 누운 어머
니 소위 아니라는 것이다,
그 申翼熙(신익희) 銜字(함자)를 보건데 地支(지지)申(신)과 나래가 다른 辛
(신)의 正官(정관)을 쓴 모습이다 소이 申中(신중)庚(경) 七殺官(칠살관)을 쓴
게 아니라, 나래가 다른[배열이 다른] 酉(유)中(중)에로 록을 얻는 辛官(신관)
을 썼다는 것이다 熙(희)字(자) 뱀의 신하가 되어선 불에 탄다 역시 食傷(식
상)運(운)에 돌아가신다는 뜻이니 巳中(사중)에 祿(록)을 얻는 丙(병)年(년) 巳
午(사오)火氣(화기) 登天(등천) 하는 달에 에 申(신)七殺官(칠살관)을 억제해버
리니 七殺官(칠살관)을 억제하는 마당에야 그 官性(관성)인들 부지할 것인가 이
다 이래 巳字(사자)라는 食傷(식상)권총 丙字(병자)년의 君王(군왕)이 타겟 辛
(신)이라 하는 臣下(신하)를 맞추게되니 열차[불 의 역마=申年(신년)]에서 뇌일
혈 [머리에 피가 몰려선 돌아가는 현상인 것이다] 로 사망하다 要(요)는 고무
래가 얹쳐져 있는 午字(오자) 馬(마)가 所以(소이) 水氣(수기)를 밀어내기 때문
이라 할 것인데 水氣(수기)가 필연코 此(차) 사주에는 藥(약)인 것이다 , 하다
못해 主治醫(주치의) 水姓(수성) 가지신 분이 옆에 계셨더라도 혹시 급 서거를
막을수 있을 수도 있었다 할 것이리라 , 血液(혈액)은 水氣(수기)이고 뇌일혈
은 수기를 정상 아닌데로 밀어내는 바람에 그 핏줄이 터져선 사망하게되는 것이
다 , 地支(지지)에 寅(인)午(오)半(반)局(국)을 갖고 있는데 癸巳(계사)나 甲
午(갑오)월에 돌아 가셨을 것이니 그 火氣(화기)가 水氣(수기)를 밀어내고 木氣
(목기)가 火氣(화기)를 도와주는 그러한 현상이 인다할 것이다



신익희 [申翼熙, 1892.6.9~1956.5.5]
요약
한국의 정치가·독립운동가.

본관 평산
호 해공
별칭 자 여구
활동분야 독립운동, 정치
출생지 경기 광주
주요수상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신익희선생묘 / 서울 강북구 수유동.

본문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여구(汝耉)이며 호는 해공(海公)이다. 경기 광주
(廣州)에서 출생했다.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漢城外國語學校)를 졸업하고 일본
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政經學部)에 들어가 한국 유학생들과 학우
회(學友會)를 조직하고 총무 ·평의회장 ·회장 등을 역임, 기관지인 《학지광
(學之光)》을 발간하여 학생운동을 하였다. 1913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 고향
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교수가 되었다.

1918년 최린(崔麟)·송진우(宋鎭禹) 등과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 1919년 3·
1 운동 당시에는 해외와의 연락 임무를 맡았다. 그 해 상하이[上海]로 망명하
여 임시정부수립과 동시에 내무차장·외무차장·국무원 비서장(國務院秘書長)·
외무총장 대리·문교부장 등을 역임, 내무부장으로 있으면서 광복과 더불어 귀
국, 김구(金九) 등 임시정부 계통과는 노선을 달리하여 정치공작대(政治工作隊)
·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이승만(李承晩)과 접근하고, 1946년 대한독립촉성
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부위원장, 자유신문사(自由新聞社) 사장, 국민대학
(國民大學) 초대학장 등을 겸하다가 그 해 남조선과도입법의원(南朝鮮過渡立法
議院) 대의원에 피선, 1947년 의장이 되었다.

지청천(池靑天)의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과 합작해 대한국민당(大韓國民黨)을
결성하고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부의장이 되
었다가 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의장에 피선, 정부수립 후 이승만과 멀어
지기 시작한 한민당(韓民黨)의 김성수(金性洙)의 제의를 받아들여 1949년 민주
국민당(民主國民黨)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에 당선, 다시 국회의장에 피선되고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民主黨)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
보, 자유당의 이승만과 맞서 호남지방으로 유세가던 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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