益之三爻(익지삼효)의 토정서 연달아 쓰는 해석이다
相瓦卦(상와괘)가 山地剝卦(산지박괘)에 火水未濟(화수미제)를 이루는지라 역
시 산길 험로에 길 가이드가 없는 형태를 그린다 그래서 토정서에 말하길 暮到
山路(모도산로)에 有誰指示(유수지시)인가?
저믄날 산길에 누가 있어선 갈길을 손가락으로 제시하여 줄 것인가 = 이렇게 해
석하고 있는 것이다 ,
또 앞서의 해석에서 말을 하였지만 삼위의 위치가 소이 의만 부르 짓는 자리이
지 熟知(숙지)한 지식 經驗(경험)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이라 소이 그 기능이 떨
어지는 자질이 된다는 것이라
그래선
雖有良匠(수유양장) 이나 求材則難(구재즉난) 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한다
면 비록 좋은 도구 연장 활과 화살은 구비되어 있는 형태이나 그것을 다룰만한
자질의 동량감은 구하려면 어렵고나 함인 것이다
소이 저 잘난 체 하는 넘들이 실제론 그 일을 맡겨 보면 그 학문과 현실과의
괴리를 전혀 모르는 지라 그리곤 경험 숙달이 없는지라 제대로 처리할리 만무
라 그 자리가 아깝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그 활과 화살에 비유될 만큼의 아주
소중한 匠人(장인)의 자리인데 그것을 다루지 못한다면야 그것을 써먹을 수 없
는 동량감 재목이라면야 그 뭣인가 굽으러져도 한참 구부러진 나무요 그 불쏘시
게 정도 밖에 더 써먹을 수 있겠는가 이런 견해인 것이라 그러므로 그 잘 난
체 하기에 앞서 그 실력을 쌓으라는 말도 된다
하지만 그 순수한 면이 正人(정인)君子(군자)에게 는 있는지라 오히려 그 實益
(실익)만을 탐하는 무리들 소인배들 보다는 그 참신한 면이 있다는 것이라 이것
은 그 배우려하는 그 義(의)를 부르짓는 어린자를 북돋는 말이 될 것이고, 또
이런 무리들의 짓까불고 입방아 찧는 것을 나쁜 것으로 본다면 그 활과 화살이
좋은 것이 될것이라 이래 양단간에 시비 흑백을 가려서는 德(덕)不德(부덕)을
논하게 되는 지라 그래서 또 하는 말이
鳳入烏群(봉입오군)하니 反損減德(반손감덕) 이라, 소이 鳳(봉)을 정인군자
그 시험받는 배우려하는 자가 그 잘난체 하는 것으로 보임으로 그 실익만 탐하
는 까마기 소인배들이 시험하는 것으로 본다면 도리혀 군자의 덕이 손감을 받는
다는 것이고, 그 반대로 활과 화살등 좋은 연장 도구를 鳳(봉)으로 본다면 참세
떼 처럼 입방아만 찧는 지식이 아직 부족한 아그들 에게는 과분한 연장이라는
것으로서 그래 주어봤자 도리혀 그 器物(기물)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그런 의
미도 내포해 갖고 있는 것이라 소위 서로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형태 아집과
독선 저만[자기들만]잘난체 하는 형태를 그린다는 것이리라
이래서 한가지 爻象(효상)이라도 여러 가지 類推(유추) 해석에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