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배울 때 기초적으로 익히는 것이 오행 배속 물상이다. 만물을 오행에 배분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목은 나무, 화는 불, 토는 흙, 금은 쇠, 수는 물 이런 식이다. 기타등등 소리, 방향, 상념, 색깔 등등 오만 잡가지를 오행이라는 바구니 담아서 특성을 나눈다.
오행의 시작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물질이었다. 오행이라는 체계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오행을 표현하는 물질을 끝까지 가지고 가려는 잘못된 관행이 사고방식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오행이 뭐냐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십중팔구는 목화토금수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목화토금수는 뭐냐 라고 질문했을 때 오행 이라고 답하면 회초리 좀 맞아야 한다. 오행을 목화토금수 라고 보는 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목화토금수가 무엇이냐 라는 것이다.
여기서 잘못된 것이 목화토금수를 만물과 연결지은 것이다. 그 폐단이 바로 물상이다. 물상으로 접어들면서 사주가 미신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논리의 결여가 발생하고 사주의 발전이 더디게 되고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물상을 이해하려면 물리를 공부하는 것이 답이다. 물리학자들 앞에서 목의 물상을 읊조리면 얼마나 우수꽝스럽겠는가.
사주에서 쓰이는 오행의 순서가 지금처럼 되기까지 여러 번의 착오가 있었다. (주역에서는 다른 순서가 쓰인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오행에 담긴 논리를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오행의 물질상은 단지 그 수단이었을 뿐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오행이 나타내는 논리다.
즉, 목화토금수라는 것은, 지금 여기서 그 정의를 보여주진 않겠지만, 논리의 도구라는 것이다. 논리의 도구는 무색무취하다. 오행은 그것들의 관계에 의해 이해를 해야지 개개의 오행이 만물을 담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미신적이고 종교적일 뿐이다. 오행의 만물상은 통계로도 증명된 바 없고 증명될 수도 없다.
오행에 오만 물상을 다 집어 넣으면 장황하게 떠들기는 좋다. 하지만 장황하게 떠드는 것은 논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장황하게 되면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기 쉽다. 결국 자가당착에 빠져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