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 . . 전에 어느 옛글에서 같은 사준데 배에서 태어난 아이와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의 삶의 격이 달라진 글을 논한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이 나라에 따른 사주 보는 내용을 여쭈어 본적이 있는데, 이미 운영자님과 돌도사님이 설명하신대로라 굳이 감히 이야기 할바 없으나, 같은 사주라도 미국과 한국의 기운이 다르니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관상에서 골상과 심상을 이야기 하는 대목이 있는데, 거죽을 관찰하는 이유는 의사가 진맥을 통해 병을 관찰하는 것과 같으니, 결국 내용을 살피기 위해 표면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해서 어떤 분은 가족 모두의 사주를 보고 그 사람의 사주를 살피시기 까지 하시며, 심지어는 조상대의 사주까지 면밀히 살피시는 분도 있습니다. 단학선원과 인연을 가진 듯 하시니 그쪽에서 많이 이야기 하는 기운줄이나, 혹은 다른 보통 학교 공부와 관련에서 환경과 상호 작용, 지리학 이론등을 참조 하시다 보면, 사주역시 모자람에서 완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 ( 물론 도를 통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그러한 학문적인 이론에 얽매이지 않으시겠지만 . . . 전 아니라서 ) 연관성이 적지 않은면이 있죠. 사소한일에서 도를 찾는다 고 얼핏 비추신 모 스님 사이트의 말을 도둑질 하면 제 중언 부언 없이도 님께서 이미 충분히 이해 하신 내용을 다만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 . . . 쌍둥이 사주 보는 법이 매우 다양하게 많더군요. 저는 어떤 방법이 정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방법을 달리하므로 다르게 보는데 . . . 심리학을 연구하는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쌍둥이는 다른 직업과 다른 삶을 겪을 지언정, 성격과 습성, 심지어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있어서 까지 설명하기 어려운 공통점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 하더군요.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분야인 동시에, 연구를 통해 사주학의 공력이 더욱 강해질 분야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번째 . . . 단학 지도자님들은 사주가 없다 말씀 하시는 이야기는 어쩌면 상관없는 부적이나 치성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임시 방편이 업력을 끊을 수는 없고 다만 방편으로 안심이나 집중, 정성이 안에 담긴 무엇의 변화를 보일 수만 있다면 그 결과는 달라진 만큼 같지 않을 거라 봅니다. 인연에서 벗어나려면 생각 지음을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 . . . 무위, 해탈, 단학성완의 성통 (공완은 다른 부분) 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훌륭한 신통력은 힘을 부림 없이 마음으로 주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음이 아닌가 가끔 의심을 해보곤 하죠. 그러나, 전에 강증산 같은 분의 사주를 누가 논한 적이 있는데 . . . 도력이 사주의 흐름을 막지 못하는 것인지 . . .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는 것인지 . . . 조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수천년전 성인이 스스로 독약이 들어있는지를 알면서 마시는 대목을 생각해보면 . . . 점점 그런 생각이 들곤 하죠. 대승은 어렵고 미묘하가요, 아니면 너무 쉬워서 자기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것인가요 . . . 저는 무지하여 감히 질문만을 거듭하게 되는 군요.
스님이 스님이 아니고 목사님은 목사님이 아니고 신부님은 신부님이 아니니 . . . 직위나 직책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내면의 흐름을 살피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면 (왠지 명리학의 요지를 말하는 대목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가는 군요) 단학 지도자라하여 단학 지도자는 아니지요. 반대로 스님은 스님이고 목사님은 목사님이고 신부님은 신부님이라면 . . . 단학 지도자는 단학 지도자 입니다.
이상 관념으로 쓴 글이니 게의치 마시길 . . . 또한 이 글을 읽고 제 주제넘음에 불쾌감을 느끼실 많은 분들께 미리 사죄를 올립니다.
공부 많이 하셔서 많이 베푸시길 바랍니다.
뉴질랜드에서
무지몽매한 영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