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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신비경 28
날짜 : 2005-06-30 (목) 01:05 조회 : 1254

* 다음은 귀거래사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사주 명조다

辛 庚 己 丙
巳 申 亥 寅

寅申巳亥(인신사해) 四生(사생)四絶(사절)을 깔고 있어선 범상치 않음을 알 것
같다
此(차) 四柱(사주)는 池塘(지당) 楊柳(양류)에 黃鳥(황조) 鶯(앵)鵑(견)이 노
니는 사주다
함자 그대로 날개인 늦은 봄날 화창한 날씨의 연못에
밝은 모습이라는 것이니 양류 버들가지 숲에 몸을 숨기고선 옥선률을 굴리는 黃
鳥(황조)라는 것이다 巳申(사신)水氣(수기)에 根(근)을 박은 寅亥(인해)合
(합) 버드나무가 銳氣(예기) 丙(병)을 내고 또 그銳氣(예기) 己(기)를 내고 또
그銳氣(예기) 庚辛(경신)을 내니 아주 멋들어지게 가지가 척척 늘어진 수양버드
나무에 붉고 노란색[丙己(병기)[붉은 벼슬을 달고 있는모습 갖기도 하다 ]을
잘 갖추어선 그 빛에 빛나는 꾀꼬리가 食傷(식상)[庚辛(경신)]으로 玉音(옥음)
을 굴려선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도연명 [陶淵明, 365~427]
요약
중국 동진(東晋) ·송대(宋代)의 시인.

본명 도잠
별칭 자 연명 ·원량, 시호 정절선생
국적 중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장시성 주장현의 남서 시상
주요작품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귀거래사》
본문
자(字)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 잠(潛). 문 앞에 버드나무 5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장시성[江西省] 주장현[九
江縣]의 남서 시상(柴桑) 출생. 그의 증조부는 서진(西晋)의 명장 도간(陶侃)이
며,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가문에서 태어
났지만 생활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소지주 정도의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
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밀리면서 생활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진군참군(鎭軍
參軍) ·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쩌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
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
來辭)》이다. 사전(史傳)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出迎)을 거절하고, “나
는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
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칭하였
다. 그의 시는 4언체(四言體)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五言體) 47편이 전
해지고 있지만, 기교를 그다지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
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는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활로부터
스며나온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귀족적 생활에서 풍겨나온
여유 있는 유희문학(遊戱文學)이 아니라 민간생활 그 자체를 노래한 문학이었
다. 따라서 그의 시는 따스한 인간미가 있으며, 고담(枯淡)의 풍이 서려 있다.
형식면으로는 대구적 기교(對句的技巧)나 전거(典據) 있는 표현은 별로 쓰지 않
았으므로, 같은 시대 시인인 사영운(謝靈運)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양(梁)나
라의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서는 “고금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종
(宗)”이라 평가하였으며, 후세에도 똑같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풍은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儲光羲) ·위
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문학사상으로 남긴 업적은 매우 크다. 그리고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는 《문선(文選)》에다 9 편을 수록하여 전집을 편집하였다. 이후 판본(版本)
및 주석서가 나왔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
記)》 등 산문에도 뛰어났으며, 또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 《수신후기(搜神後
記)》의 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 다음은 金大建[기대건] 신부의 명조이다

甲 丁 戊 壬
辰 丑 申 午

김재규 단종대왕 유성룡등 이승만등 그 丁字(정자)日干(일간) 은 대략 政客(정
객)이나 지도자가 되면 고만 그 梟首(효수) 귀신이 들어 붙어선 , 목이 잘린다
는 것이리라 가벼우면 下野(하야)나 削奪官職(삭탈관직)이요 심하면 刑場(형장)
에 이슬로 사라지는 것 같다
안중근 의사 조는 아닌데 역시 윤봉길 의사 조를 볼 것 같으면

乙 丁 戊 戊
巳 未 午 申

이라 그 丁字(정자)는 확실히 그 불미한 점을 안고 있다 할 것이다

*다음은 청산리 싸움의 주인공 金佐鎭(김좌진) 장군의 명조이다

丁 庚 丙 己
亥 午 寅 丑

함자로는 金(금)을 도와 鎭壓(진압)한다는 뜻인데 庚金(경금)을 火氣(화기)가
둘러 싼 모습인데, 이것이 전쟁에 화력을 말할 것이라 소이 戰場(전장)마당의
陣中(진중)에 將軍(장군)으로 있는 것이 바로 庚金(경금)이라는 것이다 庚金(경
금)이 寅亥(인해) 合木(합목)을 쥐고 있음에 그 火氣(화기) 根氣(근기) 所以(소
이) 兵力(병력)의 指揮權(지휘권)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요 賊勢(적세) 水氣(수
기) 陰凶(음흉)한 도둑 어두운 넘을 정벌 하기 위하여선 그 火氣(화기)의 銳氣
(예기) 土性(토성)을 그 年柱(년주)대로 泄氣(설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압할
鎭字(진자)를 破字(파자)해 본건데 金(금)이 참이라는 것이니 분명 庚金(경금)
이 그 참주인 으로서 그 陣中(진중)에 座(좌)鎭(진)하고 있는 그런 형태라 할
것이다

* 앞서 金斗漢(김두한)이와 이범석 장군의 명조에서 설명했지만 확실하게 김장
군의 日干(일간)은 庚(경)日干(일간) 이다 ,
즉 이범석 장군을 휘하로 두고 김두한이의 아버지이며 그 婦人(부인)性(성)이
둘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이범석 장군과 김두한이 명조를 갖고와 보면

戊 戊 戊 庚
午 午 子 子 이범석 장군

己 辛 戊 戊
丑 丑 午 午 김두한 국회의원

金佐鎭(김좌진)장군의 명조를 볼진대 庚午(경오)대이며 丁亥(정해)時間(시간)이
다 소위 火克金(화극금)으로 그 사망하는 것을 알수가 있는데 그火氣(화기)에
의하여 죽음은 물론 그 공산주의자를 갖다가선 빨갱이라 하는데 남방 적색이
곧 빨갱이라 소위 그 누가 죽인다는 것까지 다나오고 있는데 丁午(정오)를 그
亥字(해자) 玄武(현무)가 잡고 조종하는 모습인데 결국 밝지 못한 죽음 흉탄에
간다는 것이리라 검은 넘의 사주를 받은 적색 성향이 그 일간을 克(극)해 버린
다는 그러한 원리다
그런데 일설에는 그 정치적인 利害(이해)로 汚名(오명)을 공산주의 자들에게 덮
퍼 씌우기 위하여선 공산주의자가 죽였다는 것은 날조된 것이라 하는 설도 있
음에 확실한 것은 알수가 없다할 것이다 , 그러니깐 亥字(해자) 조정은 음흉한
자의 술수로서 그래 적색성향을 띤자가 使嗾(사주) 받아서는 죽이는 것처럼 비
춰진다는 것으로 그러한 樣相(양상)을 그리는 것을 상징한다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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