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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이란 자에 대해서 좀 더 알아 본다면
날짜 : 2005-12-08 (목) 08:16 조회 : 1275

揚 雄 (52 B.C-18 A.D)

양웅은 字가 子雲이고 蜀의 成都사람이다. 그는 漢 宣帝 甘露2년(52 B.C)에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여러 가지 서적을 폭 넓게 읽었
다. {漢書}에는 그를 "그 사람됨이 단순하고 수더분하였으며, 말은 우물우물하
여 빨리 이야기할 수 없었다. 묵묵히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淸靜無爲하
며, 기호하는 것과 욕망을 적게 하여, 부귀에 급급하지 않고, 빈천에 근심하지
도 않았다."라고 평하였다. 당시 司馬相如가 賦를 지었는데 그 문체가 아름답
고 우아하여, 양웅이 매우 흠모하였다. 그리하여 그도 자주 賦를 지었는데, 언
제나 사마상여의 작품을 모범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賦를 짓는 것이
광대나 하는 일로서 비록 풍자에 뜻을 두지만 종종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을 깨
달아, 다시는 賦 짓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易}의 체제를 본떠 {太玄}이라
는 저술을 펴냈다. 그 내용이 깊고 오묘하여,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것을 배우는 자는 배움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일찍이 유흠이 그것을 읽고 양
웅에게 말하였다. "헛되이 스스로 고생하였다. 요즘 학자들은 보수를 주어도
{易}을 설명할 수 없는데, 게다가 {玄}을 공부해서 무엇하겠는가? 나는 후세 사
람이 그것을 장독 덮는 데나 쓸까봐 걱정이다.(空自苦. 今學者有祿利, 然尙不能
明易, 又如玄何? 吾恐後人用覆醬 也.)"({漢書}.[揚雄傳]) 양웅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또 {論語}를 본떠 {法言}을 지었고, {倉 }을 본떠
{訓纂}을 지었으며, {虞箴}을 본떠 {州箴}을 지었다. 이로 인해 그는 모방의 명
수로 불려졌다. 王莽이 漢나라를 찬탈하였는데도 그는 여전히 대부 벼슬을 하
여, 후세 사람들의 비난을 상당히 받았다. 그는 王莽 天鳳5년(18 A.D)에 71세
로 세상을 떠났다.
漢 武帝가 유학을 장려한 뒤, 비록 온 세상 학자들이 대부분 유학을 연구하는
데 치우쳤으나, 당시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도리어 여전히 老莊의 無爲淸靜의
학설을 좋아하였다. 이 때에 유가와 도가 두 학파의 학설을 조화하여 하나로 종
합한 견해를 수립한 사람이 바로 양웅이다. 그는 {易}을 본떠 {太玄}을 지었으
나, {태현}의 사상은 대체로 노장학파에서 나온 것이다. 이른바 '玄' 즉 本體
는, 공맹은 자주 말하지 않은 것이고, 그 용어도 {老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리고 처세술에 관한 글인 [解嘲]에도 노장의 恬淡淸靜의 방법을 취하기를 주장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덕 이론 측면에서 그는 도리어 유가의 견해를 채용하
여 仁.義.禮.樂을 중시한다. 바로 {法言}이 이를 상세하게 설명한 것으로서, 여
기에서 그는 공자를 지극히 추앙하였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도 양웅의 학설이
유가와 도가의 학설을 종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太玄}이라는 책은 {易}의 체제를 본떠 지은 것이다.
{역}에는 이른바 음.양(' '과 ' ')이 있는데, {태현}에는 一.二.三( , ,---)이
있다. {역}의 重卦는 각기 六爻가 되는데, {태현}의 각 首는 方.州.部.家의 四
重이 있다. {역}은 八卦를 서로 중첩하여 64卦가 되는데, {태현}은 一.二.三을
方.州.部.家에 조합하여 81首가 된다. {역}은 각 卦가 六爻로서 모두 합하면
384爻가 되는데, {태현}은 각 首가 九贊으로서 모두 합하면 729贊이 된다. 首
는 물론 卦에 해당되고, 贊은 물론 爻에 해당되지만, {역}의 卦는 六爻이고 爻
에는 각기 辭가 있으나, {태현}의 首는 四重이어서 도리어 별도로 九贊을 만들
어 그 아래에 辭를 달았다. 그러므로 首와 贊은 제각기 제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서, 爻와 卦가 서로 모양이 같은 것과는 다르다. 二贊이 합하여 하루가 되니,
一贊은 낮이 되고 一贊은 밤이 된다. 그리하여 729贊은 364.5일이 된다. 그리
고 이 것 외에 별도로 2贊을 보태어 일 년 365.5의 數를 만든다. 그 밖에 {역}
의 점치는 방법과 十翼에 해당하는 모든 것은 {태현}에도 모두 있다. 요컨대
{태현}은 始.中.終의 세 가지 근원으로써 {역}의 陰.陽이라는 두 가지 근원을
대체하고, 아울러 당시의 曆法을 참작하여 만들어낸 한 권의 신비한 저작이다.
양웅은 본체를 '玄'이라고 하였다. '玄'이라는 명칭은 {老子}第一章 "玄之又
玄, 衆妙之門."에서 나온다. 본체는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이름하여 '玄'이라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러러 쳐다보면 위에 있고, 구부려 들여다보면 아래에 있으며; 발돋움하여 바
라보면 앞에 있고, 이상히 여겨 잊어버리면 뒤에 있다. 그것을 어기려고 하면
할 수 없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玄이다.(仰而視之在乎上, 俯而
窺之在乎下; 企而望之在乎前, 異而忘之在乎後. 欲違則不能, 默而得其所者, 玄
也.)"({太玄}卷7)

즉 玄은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또 "무릇 현이라는 것은 天道이고 地道
이며 人道이다.(夫玄者, 天道也, 地道也, 人道也)"({태현}卷10)라고 하여, 玄
은 우주의 최고 원리이며 만물의 생성과 그 사이의 법칙이 모두 玄에서 말미암
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당연히 모두 노자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본체
로부터 만물이 생성되는 순서를 보면, 노자는 '一'로부터 '二' 그리고 '三'이
된다고 하였는데, 양웅은 '一'로부터 3 . 9 . 27 그리고 81이 된다고 하여, 둘
사이에 약간 다른 점이 있다. 玄은 우주의 모든 것의 근원으로서, 나뉘어져 셋
이 되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方'이라고 하며, 方은 一方.二方.三方의 세 개의
方이 있다. 이 세 方은 또 각기 나뉘어져 셋이 되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州'라
고 하며, 각 方은 一州.二州.三州가 있어서 모두 합쳐 9州가 된다. 각 州는 또
제 각기 나뉘어져 셋이 되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部'라고 하며, 각 州는 一部.
二部.三部가 있어서, 모두 합쳐 27部가 된다. 각 部는 또 제각기 나뉘어져 셋
이 되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家'라고 하며, 각 部는 一家.二家.三家가 있어
서, 모두 합쳐 81家가 된다. 이것은 공간 측면으로 설명한 것이다. {태현}은
또 方.州.部.家 넷을 종합하여, 예를 들어 (一方, 一州, 一部, 一家), (一
方, 一州, 一部, 二家)등의 '首'가 되며, 각 首 아래에는 각기 九贊을 덧붙였
다. 二贊이 하루가 된다. 이것은 시간 측면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
간.공간 할 것 없이 우주의 강령은 모두 {태현} 한 권의 책에 섭렵되어졌다. 그
는 오직 {태현}의 이치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면, 미래의 일을 모두 예측할
수 있으며, 예측의 방법도 {태현}에서 규정한 바에 의거하면 된다고 생각하였
다. 이로부터 우리는 양웅 사상의 내용이 비록 한편으로 노자와 접근하지만, 다
른 한편으로 여전히 음양가의 신비적 경향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또 "一과 六은 함께 근본이 되고, 二와 七은 함께 밝게 드러
나며, 三과 八은 벗을 이루고, 四와 九는 道를 같이하며, 五와 五는 서로 지킨
다.(一與六共宗, 二與七共明, 三與八成友, 四與九同道, 五與五相守.)"({태현}卷
10)라고 하였는데, 이는 오행으로 수를 짝지우는 학설로부터 논의한 것이 틀림
없다. 물론 {태현}은 당시 유행하던 참위설에 비해 미신적인 색채가 훨씬 적지
만, 양웅도 결국은 음양오행설을 완전히 벗어난 학자라고는 할 수 없다.

다음으로 그의 윤리학설을 보면, 양웅의 {法言}은 유가를 위주로 하고 공자
를 근본으로 삼는다. 그는 여러 학자들을 비평하는데, 노자는 도덕을 논하는 것
은 받아들일 만하나 仁義禮樂을 반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고([問道]참조), 장
자와 양주는 호탕하지만 원칙이 없으며(蕩而不法), 묵자와 安 은 검소하지만
禮를 없애버렸고(儉而廢禮), 申不害와 韓非는 험난하여 교화가 없으며(險而無
化), 鄒衍는 우원하여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迂而不信)([五百]참조)라고 하였
다. 세상의 모든 시비.선악은 聖人(공자)의 언행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
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옳다고 하며,
그르다고 여기는 것을 그르다고 하는데, 장차 누가 그것을 바로 잡겠는가? 대답
하기를, 만물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으면 天에게 그 정리를 맡기고, 여러 사람들
의 말이 혼란스러우면 聖人(공자)에게 그 결단을 맡긴다. 어떤 사람이 또 묻기
를, 어떻게 성인을 직접 만나 결단을 맡기겠는가? 대답하기를, 성인이 살아 있
으면 그 사람에게 맡기고, 없으면 서적에 맡기니 그 기준은 통일되어 있다.(或
曰:人各是其所是而非其所非, 將誰使正之? 曰:萬物紛錯則懸諸天, 衆言淆難則折諸
聖. 或曰:惡覩乎聖而折諸? 曰:在則人, 亡則書, 其統一也)"(吾子])
"천을 설명하는 것은 {역경}보다 더 잘 논한 것이 없고, 사건을 설명한 것은
{서경}보다 더 잘 논한 것이 없으며, 본체를 설명한 것은 {예기}보다 더 잘 논
한 것이 없고, 의미를 설명한 것은 {시경}보다 더 잘 논한 것이 없으며, 이치
를 설명한 것은 {춘추}보다 더 잘 논한 것이 없다.(說天者莫辯乎易, 說事者莫辯
乎書, 說體者莫辯乎禮, 說志者莫辯乎詩, 說理者莫辯乎春秋)"({寡見])
"산 기슭의 오솔길은 이루 다 지나갈 수 없고, 담장에 나 있는 문들은 이루 다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부터 들어갈 것인가? 공자이다. 공자는 학문
에 들어가는 문이다.(山경之蹊, 不可勝由矣, 向牆之戶, 不可勝入矣. 曰:惡由
入? 曰:孔氏. 孔氏者, 戶也.)"([吾子])

이와 같이 양웅은 학문과 수양을 모두 공자와 경서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
다. 그는 윤리도덕 방면으로 {중용}.{맹자}에 나오는 五倫說과 동중서가 주장
한 五常說을 받아들였다. 그는 동중서의 재능과 덕망에 매우 감복하였고 먱자
에 대해서도 자처하였으므로([吾子]참조), 그의 윤리도덕설이 맹자와 동중서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人性에 관하여 그는 맹자와 순자
의 학설을 종합하려고 하였다. 그는 "사람의 본성은 선악이 섞어 있으므로, 그
선을 닦으면 선인이 되고 그 악을 닦으면 악인이 된다.(人之性也, 善惡混, 修其
善則爲善人, 修其惡則爲惡人.)"([修身])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선하거나
악하게 될 수 있는 까닭은 氣로 말미암는다고 하여, "氣라는 것은 선과 악을 향
해 가는 말과 같구나!(氣也者, 所適善惡之馬也歟!)"([修身])라고 말하였다. 그
러나 무엇을 일러서 氣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설명이 없는데, 대체로
맹자가 말한 氣("志, 氣之帥也")와 서로 같다. 요컨대 그는 우리의 성격의 선악
은 전적으로 어떻게 수양하는지에 따라 정해지므로 수양이 지극히 큰 비중을 차
지하는 것이다. 수양의 최고 목표는 당연히 성인의 도에 있으므로, 모든 사람들
은 마땅히 그 어려움을 두려워하거나 스스로 물러서지 말고 노력.정진하여 인격
이 완성되는 경지에 도달하도록 해야한다. 그리하여 그는 "수많은 하천들은 바
다를 배워서 바다에 이르지만, 구릉은 산을 배우지만 산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
므로 구분 짓는 것을 미워한다.(百川學海而至於海, 丘陵學山而不至於産. 是故惡
夫 也.)"([學行])라고 하였다. 이처럼 양웅은 자포자기를 가장 반대하였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양웅의 {태현}은 음양오행설 등 미신적인 성분을 완전
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법언}에서 그는 도리어 당시 민간에 유행하던
신선의 황당무계한 설명에 대해 분명하게 배척하는 뜻을 표시하였다.

"신선과 요괴는 까마득히 망망하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니
성인은 언급하지 않는다.(神怪茫茫, 若存若亡, 聖人曼云.)"([重黎])
"태어남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이 있으며,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
다는 것이 자연의 도이다.(有生者必有死, 有始者必有終, 自然之道也.)"([君子])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세상에 신선이 없으면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대답하기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시끌시끌 떠들썩하지 않던가? 오직 시끌시
끌 떠들썩한 말이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신선의 존재를 질문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것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있는가 없는가는 문제가 아
니다. 물어볼 만한 것은 忠孝에 관한 문제이다. 충신.효자의 문제는 황급한가?
그렇지 않은가? (或曰:無仙, 則焉得斯語? 曰:語乎者非  也歟? 惟  能事無爲
有. 或問仙之實. 曰:無以爲也. 有與無, 非問也. 問也者, 忠孝之問也. 忠臣孝
子,  乎不 ?)"([君子])

이와 같이 그에게 있어서 장생불사는 결코 현실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니,
우리들이 마땅히 힘써 추구해야될 것은 차라리 충효 등 사람다움의 도리에 있
지 결코 신선이 되는 도에 있지 않다. 그의 이러한 이론은 方士들의 미신을 타
파하는데 있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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