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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6554. 6539. 6532. 제 사주좀 봐 주세요..
날짜 : 2006-03-15 (수) 02:17 조회 : 909

己 庚 庚 丙
卯 辰 子 午


庚 丁 甲 癸
子 亥 寅 丑

당신의 사주가 化木(화목)을 하던 아니던 간에 위분이 당신의 남편이라는 것
은 어길수 없는 형세라는 것이고, 소위 당신이 庚字(경자)가진 분의 부인네가
된다는 의미에서 그 庚子(경자)시 外戚(외척)柱(주) 소이 그 남편 되시는 분이
당도하는 모습인 것이라 그러므로 천상배필인 것이다

금년에 운세 좋은 둥지를 만들어놓고선 오게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그것도 어머
니와 함께 말이다

水山蹇(수산건)괘는 새가 날아들게 하는 빈 둥지라 보금자리라는 것이다
그 행하기 뭣한 行步(행보) 누구의 도움을 받았으면 할 적에는 그 평탄한 서남
땅으로 오게하는 것이 이롭고 소위 서남 땅은 坤母(곤모) [어머니]방위이다 그
험난한 싸움하는 언덕 받이 戰剋(전극)의 땅 동북 산 언덕진 곳으로 가는 것을
불리하게 마련이라

그러니깐 험난하게 추진하여 무엇을 실행할 것이 아니라 그 둥지를 잘 만들어
갖고 있으면서 그 아쉬워 하는 자들이 그 둥지를 찾아 오게끔 하는 전략을 구사
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리라

五爻(오효)가 동작하였다 크게 걸음걸이를 절름거리는 시기이다 혼자선 도저
히 행하지 못할 것만같다 그래선 같은 꼴 닮은 꼴 벗이 와선 같은 입장이지만
협조하여준다면 제대로 걷지 않겠느냐 이다 大蹇朋來(대건붕래)의 벗이온다는
것은 그 같은 모양새를 한분이 온다는 것이라 그러니 어머니나 자식 또는 그 동
반자 아님 형제 자매 등등이리라

그러니깐 잘 협조하면 원대로 되지 않겠는가 보는 것이다, 謙卦(겸괘)로 변하
니 初稼平地(초가평지) 山頭與齊(산두여제) = 처음은 평지에 씸었 섰는데 나중
은 자라어선 산머리와 같이 성장 발전해 나갔다 하였으니 잘 크게 성장할 것이
라는 것을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음 다잡고 한다면 그 성공하지 않겠는가 하여
보는 것이다

일이 몸에 맞게 된다면 병도 치유하게될 것이다 많이 벌거든 ,부처님께도 드리
고 없는 자들을 위하선 은혜도 베풀줄 알아야 한다하리라
일 벌려 놓고선 저가 하는 말만 믿고선 태만히 하면 안될 것이니 하려면 아주
당차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글은 철학을 연구하는 자들을 참고케 하는 글이니 너무긴 문장인지라 읽
지 않으셔도됩니다

* 예로부터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잡아 쥐고 재주가 부족한 형편에 있으면서
도 천하를 다스렸던 자들이 어찌 적다할 것인가 ? 漢(한)의 이각과 王允(왕윤)
과 晋(진)나라주의 周 (주의) 王導(왕도)무리가 이러하였다 그러니깐 그 재
주가 좀 부족하더라도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앞세운다면 그 한동안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오래도록은 버티기 힘들지 않는가 하여 보는 것이리
라 세상이 적자생존논리이기 때문에 절개가 좋고 의로움이 좋다하지만 그 세상
을 다스릴 역량재주가 부족하다면 아무리 의리를 앞세운다 하더라도 그 힘있는
자를 그렇게 견뎌내고 막아 내겠는가 이다 그러니깐 결국은 힘있는 자에게로 天
下(천하)는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한참동안은 서로가 그렇게 뜻
이 맞는 자들끼리 의지하여선 버텨보는 것이 아닌가 하여보는 것이다

* 위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 역사적인 정보를 조금 제공한다면.....

다음은 王先謙,《後漢書集解》<孝獻帝紀>卷第九 (北京 : 中華書局, 1984 )에서
李 ?이 처음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董卓部曲將李?, 郭?, 樊稠, 張濟等反, 攻京師. 六月戊午, 陷長安城, 太常?拂,
太僕魯旭, 大鴻?周奐, 城門校尉崔烈, 越騎校尉王??戰歿, 吏民死者萬餘人. 李?
等?自爲將軍.

* 이하는 역사 사전 등에 실린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李 ? ( ? - 198) 동한말 북지(北地 : 지금의 寧夏 吳忠 西南) 사람으로 자는 치
연(稚然)이다. 동탁(董卓) 밑에서 교위로 있었는데, 초평 3년(192) 동탁이 죽음
을 당하자 곽사(郭?)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장안을 공격하여 사도 왕윤(王
允) 등을 죽였다. 이 때 죽은 자가 만여 명에 이른다. 헌제(獻帝)를 협박하여
거기장군, 지향후에 봉해지고 사례교위를 받았으며 가절월로 곽사와 함께 조정
을 전횡하였다. 후에 그는 스스로 사마라 칭하였다.

흥평 2년(195) 곽사와 서로 싸우고 헌제를 협박하였으며 군사를 마음대로 하고
노략질을 일삼아 장안을 거의 빈 성으로 만들었다. 이후 2-3년간 관중에는 인적
이 끊어졌다. 헌제가 장안에서 동쪽으로 옮기자, 그는 곽사와 다시 군사를 합하
여 추격하였다. 조조(曹燥)가 군사를 이끌고 헌제를 영접하자, 두 사람은 패하
여 달아났다. 건안 3년(198), 헌제는 단외(段?) 등에게 조서를 내려 그를 죽이
게 하고, 삼족(三族)을 멸하였다.

이각 ?-198년
동탁의 부하.
전선에 나가 있을 때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되자 가후의 진언을 받아들여 장안
을 공략키로
했다. 이에 군사를 동원하여 여포를 몰아내고 왕윤을 처형한 뒤 동료인 곽사와
함께 조정을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 후 장안에서 곽사와 내분을 일으켜 혼란한 틈을 타서 헌
제가 장안을
탈출하자 이각은 다시 곽사와 화해하고 도주중인 헌제를 쫓아 괴롭혔다. 후에
헌제가 파견
한 토벌군에 잡혀 효수당했다.

왕윤(王允) : 후한의 중신. 사도(司徒)의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동탁을 제거하
고자 조조(曹操)에게 집안의 보도인 칠성검(七星劍)을 주어 자객으로 보낸 적
이 있음. 항시 조정 일을 근심하던 중, 자기 집 가기(歌妓) 초선(貂蟬)의 충성
에 감격, 그의 몸을 희생시켜 연환계(連環計)로 동탁(董卓)과 여포(呂布)의 사
이를 갈라, 결국 동탁을 죽이는 데 성공하였다. 구신(舊臣)들을 규합하여 이 일
을 총지휘할 때, 시중(侍中) 채옹(蔡邕)이 동탁의 지우(知遇)를 입었던 정의(情
誼)를 생각하고 곡하였다하여, 죽이기까지 한 것은 너무 박하다고 하더니 결국
자신도 동탁의 잔도들 손에 주ㄱ고 집안마저 멸족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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